24.06.04 07:07최종 업데이트 24.06.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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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이 제주 볍씨학교 교장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 대안학교인 광명YMCA 볍씨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2001년 1년 과정의 제주 볍씨학교를 만들었다. ⓒ 황의봉

 
5월의 봄날이 저무는 어느 저녁 '달맞이 오름' 산행. 60여 명의 참가자와 함께 제주시 구좌읍 동검은이오름에 올랐다. 황혼이 깃드는 제주 동남부의 넓은 들판과 다랑쉬오름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바다 건너 우도, 일출봉, 대수산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 어둠에 잠긴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이 안겨주는 그윽한 봄날 밤의 정취. 처음으로 경험한 달맞이 오름은 즐거웠고 또 특별했다. 이 지역이 제2공항 예정지라는 사실에 모두가 우울해진 점만 제외한다면.

달맞이 산행에 또 다른 특별한 기억이 남았으니 제주의 대안학교인 '제주 볍씨학교'(볍씨학교 제주학사로도 부른다) 학생 10여 명과 함께한 일이다. 학생들은 오름에 올라 일행과 함께 "제2공항 설러불라(그만두라)"를 외쳤다. 캄캄해진 밤이 되자 오카리나 합주 공연을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만난 '볍씨 학생'들은 여느 '요즘 학생'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언어가 달랐다. 거칠지 않았고, 욕설 섞인 말투도 없었다. 말을 건네면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했다. 일행이 사용할 돗자리와 간식거리가 담긴 박스 등 짐을 짊어지고 가면서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볍씨학교 대안교육이 궁금해졌다.

"사람은 제주로 와서 배워야 한다"
 

합창 수업 시간 성악가가 진행하는 합창 수업 시간에 뮤지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볍씨학교 학생들은 올해 10∼11월 전태일 극단과 함께 뮤지컬 전국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 황의봉

 
달맞이 오름 산행 일주일 후 조천읍 선흘리 제주 볍씨학교를 찾아 이영이 교장과 마주했다. 경기도 광명YMCA 볍씨학교 설립자이자 제주 볍씨학교 교장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기에 빠진 오늘의 우리 교육이 귀담아들어야 할 점이 무척이나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제주 볍씨학교의 모체가 되는 광명YMCA 볍씨학교 설립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제가 경기도 광명YMCA를 만들고 사회교육 활동을 하면서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문제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학교를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방과후 교실 운영, 촌지 없애기 운동, 학교운영위원회의 민주적 개혁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촌지 없애기 운동은 성공적으로 진행돼 저희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을 교육청에서 그대로 학부모들에게 발송하기도 했습니다만, 한때는 빨갱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어요.

이런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공교육에서 학교를 변화시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학부모들이 절감한 것이에요. 그래서 학부모들이 학교를 바꾸기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직접 교육을 해보자, 하면서 저에게 대안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학교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이건 늪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저의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야 하는 게 학교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저의 관심은 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 지역사회를 더 공동체적인 문화로 바꿔서 좀 더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구조로 만들자는 꿈이 있었던 것이죠."


2001년, 이영이 교장은 결국 함께 교육 개혁운동을 하던 학부모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 대안학교인 광명YMCA 볍씨학교를 만들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과정의 경우 국가가 설립한 학교 혹은 허가한 사립학교가 아니면 불법으로 보던 시절이었다. 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마라,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무릅쓰고 어렵게 설립한 볍씨학교는 어떤 대안학교였을까.
 
"볍씨학교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을 교육철학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배움의 씨앗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는 전제하에, 학교는 이를 발현시킬 수 있도록 촉진하는 작용만 하면 되지 억지로 주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교육에 임했던 것이지요. 학교 이름은 고민 끝에 우리의 주식인 쌀의 씨앗, 생명력이 응축된 볍씨에서 따왔습니다. 처음엔 초등학교 6년 과정으로 시작했어요. 교육운동을 했던 의식 있는 분들이 주축이 됐던 만큼 열망이 대단했고,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주도성이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볍씨학교 6년을 졸업하고 다른 대안학교로 진학을 했으나 학교문화가 너무나도 다르더라는 겁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자치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데 비해 진학한 대안학교에선 저희만큼 그렇게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안 되겠다, 그냥 아이들을 쭉 키워보자 해서 추가로 3년을 더해 9학년제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3까지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이렇게 시작한 광명의 볍씨학교가 어떤 연유로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서도 문을 열게 된 것일까. 광명과 제주의 볍씨학교는 어떤 관계인지도 궁금하다.

"제가 비염 증세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어요. 어디서 요양을 할까,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동백동산이 있는 선흘리를 발견한 겁니다. 구글에서 보니까 제주의 가장 큰 숲이었고 상록수림이 있는 곳이어서 여기 가면 살 수 있겠구나, 해서 이곳 선흘리에서 요양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정말 건강이 많이 회복됐어요.

그러면서 이곳의 숲이라면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요양하면서 선흘리 마을 분들과도 친해졌어요.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었고, 무척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개발에 휩쓸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마을에서라면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옛말에 말은 제주에서 키우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는데, 저는 거꾸로 사람은 제주로 와서 배워야 하고 말은 과천 경마장으로 가면 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살림 수업 학생들은 매주 인근 선흘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목공 요리 바느질 공동체놀이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진은 좌탁 만들기 수업 장면. ⓒ 제주 볍씨학교

 
제주 볍씨학교는 광명 볍씨학교에서 8학년까지 마친 학생이 마지막 1년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게 이영이 교장의 설명이다. 부모와 떨어져 동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기 주도적 능력을 기른다는 취지였다. 제주 볍씨학교는 선흘초등학교와 맞닿아 있다. '볍씨학교'라는 간판이 걸린 집에 3개 동의 작은 건물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신축한 건물 2개 동이 더 있다. 교사와 학생들이 숙식을 하고 수업할 건물을 마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13년 3월부터 제주 볍씨학교를 시작했는데,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마침 저희 학부모회 회장이 이곳에서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분이 적극적으로 지금 이 학교 건물로 쓰는 집을 찾아주신 겁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아서 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낡은 집을 목수 한 분과 볍씨 아이들이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과 흙으로 새로 건물도 한 채 지었고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만, 9학년(중3에 해당) 졸업을 한 학생 중에 학교에 남아서 제주에서의 배움의 과정을 더 경험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생겨난 겁니다. 제주 볍씨학교 '2년 차'에 해당하는 셈이죠. 문제는 이 아이들이 기거할 공간이 또 필요해진 것입니다. 이때 제가 광명 볍씨학교 초창기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여기서 집을 짓고 살면서 자기들의 미래를 탐색해 보고 싶어 하는데 3천 평 정도의 땅을 함께 사서 반은 당신들이 집 짓고 살고, 반은 아이들한테 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18가구가 찬성을 해서 모인 것이에요.

이렇게 해서 볍씨 학부모들과 제주에 살고 있던 몇몇 분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선흘 볍씨마을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공동 소유 개념의 주거단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건물이 추가로 들어서게 됐고, 아이들이 농사지을 땅도 마련하게 된 것이지요."
 

4일은 공부, 3일은 일을 하는 학생들
 

거리굿 공연 제주 볍씨학교 학생들이 4·3 예술축전에서 거리굿 공연을 하고 있다. ⓒ 박정근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 볍씨학교의 교육현장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16세 안팎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 것일까.

"광명 볍씨학교는 한 학년에 15명이 기준입니다. 현재 제주 볍씨학교 학생은 13명인데 이 가운데 2년 차와 3년 차가 각각 3명입니다. 그러니까 9학년을 졸업했지만 제주 생활을 2년째 혹은 3년째 하는 학생이 6명이나 되는 셈입니다. 교사진은 저와 담임교사 한 분이 있습니다만, 다양한 수업을 맡아주시는 강사들이 많습니다.

강사 선생님들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분들로 합창, 풍물, 염색, 마임, 건축 등의 수업을 재능 기부 형식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동아리 수업으로 기타, 바투카타(브라질 악기)를 지도해주시기도 하고요. 저는 인문학 수업을,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맡고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4일은 공부를 하고, 화·목·금 3일은 집짓기, 밭농사, 식당 아르바이트, 농장 아르바이트 등 일을 합니다. 저희가 농사짓는 밭이 약 6천 평이나 되거든요. 요즘은 귤밭에 가서 풀베기도 해야 하고 넝쿨도 제거하고 가지치기도 해야 할 때입니다. 콩을 심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는 때이기도 하고요. 이밖에 밀 양파 호박 오이 참외 수박 토마토 옥수수 가지 채소 등 저희가 먹는 작물들은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습니다."


이영이 교장이 전해주는 제주 볍씨학교의 커리큘럼은 국어·영어·수학 등 입시 위주의 일반 학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과목 자체가 다른 것은 물론, 수업방식도 달랐다. 이영이 교장이 담당하는 인문학 수업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인문학 수업은 먼저 책을 읽고 다섯 줄로 요약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완전히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대충 베껴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다섯 줄로 요약한 다음에는 한 가지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그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한 페이지로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합니다.

1년 차 아이들(9학년)의 경우 <진화와 협력>, <녹색평론>을 공부한 데 이어 다음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다룰 예정입니다. 3년 차 아이들은 최근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어요. 저희 학생들이 읽은 책들은 모두 상호부조에 관한 책입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우리 교육철학과도 맞는 내용이거든요.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놓고 토론을 하지만, 저는 어떤 게 맞는 길이라고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인 것이죠."


볍씨학교의 교육과정을 듣다 보니 학생들이 무척이나 바쁠 것 같다. 교실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전통적인 학교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볍씨학교에서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교사와 학생들의 일과는 어떻게 돌아갈까.

"아침 6시에 기상을 하면 6시 10분부터 동백동산까지 왕복 2.7㎞ 달리기를 합니다. 그다음엔 요가로 몸을 풀어주고요. 이후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5분간 읽는 '책 명상'을 합니다. 이어서 청소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식사 준비는 2명의 '밥지기'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한 사람은 가마솥에 밥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반찬을 만듭니다. 공부하는 날이든, 작업하는 날이든 항상 8시부터 일과를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집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7시부터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합니다. 매일 30분 정도 노래를 하는데, 아이들이 이 시간을 엄청 좋아해요. 기타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들도 총동원해 음악을 즐기는데, 민중가요 복음성가 대중가요 등 다양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에 이어 '하루 나눔'을 합니다.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자기가 쓴 글을 읽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동료들과 함께 그 글에 대한 코멘트를 주고받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일하는데 작업 체계가 너무 안 잡혀 속도가 늦었다, 하면 그 체계를 어떻게 다시 잡을 건가를 얘기해야 하므로 서로 코멘트를 하는 것이지요.

이게 끝나면 다음 날 일정을 정합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고, 어떤 행사에서 와달라고 요청을 하는데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의논하여 결정하는 것이지요. 다음날 일정까지 짜고 나면 잠자기 전에 200배 절을 합니다. '절 명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도 또 잠들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 다음날 행사가 있으면 이에 대비해 기획하거나 공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녁 식사 후 잠들기 전까지 이처럼 할 일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엄청 바쁩니다. 눈코 뜰 새가 없어요."


볍씨학교가 바쁘게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생들이 대외 행사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제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에 함께하는 것은 물론, 매주 월요일 선흘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목공, 요리, 인형만들기, 뜨개질, 바느질, 공동체놀이 등 '살림수업'도 맡고 있다. 토요일엔 자폐 친구들과 함께 놀아주며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대외활동의 사례들을 좀 더 들어보자.

"볍씨학교 아이들이 초등과정 때부터 여러 악기를 배워왔고, 노래를 많이 부르고 하니까 외부에서 공연 요청을 자주 받고 있어요. 최근에만 해도 4·3 예술축전과 설문대 할망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고, 즉흥춤 축제라는 국제행사에서 '여는 무대'를 저희가 했습니다. 동검은이오름 달맞이 산행에서 오카리나 공연을 했고, 장애인부모연대 행사에도 갔어요. 또 6월에는 사회적 참사와 인권 관련 행사에 가서 마임 공연을 할 예정이고요."

남다른 볍씨학교의 졸업여행
 

노래로 연대하는 볍씨학교 학생들 지난 5월28일 장애인 부모연대 제주지부 출범식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 제주볍씨학교

 
이영이 교장이 설명하는 제주 볍씨학교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상생활에서부터 대외활동까지 학생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준비하여 실행에 옮기는 자기 주도성이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자기 주도성을 발휘하여 치르는 연례행사가 졸업여행이다. 일반 학교와는 진행 과정과 내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일까.

"12월 말이면 졸업여행을 가는데 학생들이 1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각자 한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됩니다. 이 돈으로 어디를 갈지를 스스로 기획합니다. 주로 한 해 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때 만난 하와이 평화운동가가 '하와이로 와서 미군기지 반대운동도 같이 하자'고 제의해서 가기도 했고요. 또 강정의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가 '인도네시아에 평화운동 기지가 있는데, 거기서 전통 배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해서 인도네시아로 간 적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현장에 가서 사죄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고, 최근엔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원주민 부족 마을에 가서 전통악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빵과 인형'이라는 극단의 초대를 받아 미국에 갈 예정입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손녀가 남편과 함께 만든 극단으로 생태를 주제로, 큰 인형을 만들어서 공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볍씨학교는 워낙 일반 학교와는 다른 면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에는 끝이 없을 듯하다. 이처럼 독특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란 볍씨 학생들에 대해 이영이 교장은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가 보기에 볍씨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 대한 태도, 일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 같아요. 보통 아이들은 다른 존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볍씨 아이들은 엄청 관심이 많아요. 저 사람은 어떤 분일까,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질문을 해오면 기꺼이 답변해줍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써서 하는 작업에 대한 성취감이 뭔지를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임하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가 가장 독특한 것 같습니다.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도 높은 편입니다. 세월호 학생들이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는 길에 희생됐잖아요. 작년에 저희 학생들이 단원고 언니나 형들이 무사히 제주로 왔더라면 어디를 가서, 어떻게 놀았을 것인지를 재현하는 행사를 했어요. 그리고 올해 세월호 10주기 때는 반대로 수학여행을 마치고 안산의 집으로 가는 여정을 재현했습니다. 자전거를 배에 싣고 목포로 간 뒤 그곳에서 안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것이지요.

외부에서 온 분들이 보고 가장 놀라워하는 게 하루 나눔 시간에 서로 잘못을 지적하고 수용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느낀 문제점을 지적해도 화를 내지 않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시인하는 모습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체험활동을 하러 오기도 하는데 거친 말을 쓰지 않고 서로에게 코멘트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긴 다른 세상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과 협조해가면서 일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굉장히 발달했어요."


"농사 짓는 농부가 되었으면..." 이영이 교장의 소망
 

‘달맞이 오름’ 산행 야간 공연 볍씨학교 학생들이 제주시 구좌읍 동검은이오름에 올라 어둠 속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고 있다. ⓒ 황의봉

 
어떻게 보면 볍씨학교는 자연 속에서 소수정예 교육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주도적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일반 학교와는 다른 많은 장점 혹은 특징을 가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대안학교가 그렇듯이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에 고교 혹은 대학 진학을 하려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볍씨학교 졸업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될까.

"저는 졸업 후에 농사 쪽으로 갔으면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농부가 되겠다고 홍성 풀무학교 전공부에 간 아이가 있고, 생태적인 에너지 교육을 하는 친구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연극이나 조소 같은 예술 쪽으로 간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많습니다. 볍씨학교에서 입시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토론을 많이 하고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저력이 있어서인지 좀 공부하면 금방 따라잡더라고요."

앞에서 이영이 교장이 말한 대로 제주 볍씨학교에는 졸업하고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2년 차 3년 차 학생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학교에서 익힌 농사를 사업으로 일구는 학생들도 있어 시선을 끈다. 바로 콩 발효식품 템페로, 기자가 동검은이오름 달맞이 산행을 하면서 만난 배재우군도 그중 한 명이다. 템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나라 메주는 볏짚에 있는 고초균으로 발효를 하잖아요. 템페는 인도네시아의 바나나 잎이나 히비스커스 잎에서 나오는 리조프스 균으로 콩을 발효시켜 만듭니다. 우리 청국장은 사람에 따라서 기호가 다르지만, 이 템페는 요리가 쉽고 다양해서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어요. 요즘 채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템페가 보편적인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소화도 잘되고 단백질을 거의 100% 흡수할 수 있다고 해요.

3년 전 학생들이 자기들 힘으로 제주템페랩협동조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업화를 시도했습니다. 현재는 3년 차 학생 3명이 '템페두잇'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걸 하게 된 건 아이들이 콩 농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와서 템페에 대해 알려주고는 균도 주면서 이게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직접 재배한 콩으로 템페를 실제로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축산농이 지구생태계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이것이 지구를 살리는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 배경입니다."

 

프로젝트 템페두잇 인도네시아 콩 발효식품인 템페를 생산, 판매하는 프로젝트 ‘템페두잇’을 수행중인 볍씨학교 졸업생들. ⓒ 느린 사진관

   
이영이 교장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한 데 이어 인천과 부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주로 노동자와 활동가를 대상으로 교육을 해오던 그는 이후 다양한 경험을 한 끝에 시민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YMCA에 들어간다. YMCA 활동을 하면서 시민들의 의식변화를 통해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광명 YMCA를 만들고 볍씨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올해로 광명 볍씨학교를 설립한 지 24년, 제주 볍씨학교를 만든 지 11년이 흘렀다. 가족을 육지에 두고 혼자 제주에 내려와 학생들과 동고동락을 해오고 있는 '이영이 쌤'의 지난 시간과 교육자로서의 발자취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 역시 아이들과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이고 보니 농사를 할 줄 모르잖아요. 아이들에게 일하는 문화를 가르쳐야 하니까 마을 삼촌들을 따라 새벽부터 밭일 아르바이트를 많이 다녔어요. 일당 받고 하는 노동인 셈이죠.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밭일을 못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일하는 시간에 저는 서서 하는 일, 빵을 만들고 밀을 분쇄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아이들한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하고 주입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저의 삶을 보고 그냥 자연스럽게 저렇게 살면 좋겠구나, 하면 배우고 따라오겠지요. 반대로 저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배우려 하지 않겠지요. 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저는 우리 볍씨학교 아이들이 농사짓는 농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리는 가장 기초적인 일을 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농부가 많이 안 나오는 게 좀 안타깝기는 하죠."


학창 시절부터 이제 초로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운동'으로 일관해 온 이영이 교장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뿌린 '생명력이 응축된 볍씨'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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