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7 11:54최종 업데이트 24.06.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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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케겔 운동(김용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정자 분석기 무료 배포(대구광역시), 정·난관 복원시술비 지원금 1억 원(서울시 추경 예산), 여성 1년 조기 입학(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 ...

지난 1주일간 언론에서 보도된 지자체와 국책연구기관의 저출생 대책입니다. 정리하자면 동물의 생식을 위한 정책 같달까요. 케겔 운동으로 생식 능력을 늘리고, 정자의 질을 분석하고, 정관을 다시 복원하고, 여성을 일찍 입학시켜 초등학교 때부터 이성 간 매력을 느끼도록 유도하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가축이 아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냐"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황당 정책들입니다.


저출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입니다. 계층, 지역, 젠더 등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단기성 정책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관습과 문화는 더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정치권은 더더욱 저출생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데, 단기 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요.

아이 낳기가 두렵다

정훈님과 저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30대 후반에 아이가 없는 기혼남이라는 점입니다. 저출생 대책을 세우는 입장에서는 꼭 저희를 '아빠'로 만들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친구들을 보면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제가 가족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두 사람만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아내와 저의 경력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것도 고민입니다. 남성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출산과 육아 등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압박을 더 느끼는 것이 여성(아내)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 돌봄'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상당한 돈과 시간이 투여됩니다. 특히 주 양육자로 여겨지는 여성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주로 '아이 돌봄'을 잘할 조건에 있는 이들이 아이를 낳고 키웁니다.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 고용 안정성이 높은 직장에 다녀 '임출육(임신·출산·육아)'이 그나마 경력에 덜 영향을 주는 경우입니다.

나아가 한국 특유의 경쟁 문화는 아이 키우는 일을 '일생의 중대 과제'처럼 만들었고, 그로 인한 비용 증가와 사회적 압박이 얼마나 큰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체감 중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점점 더 큰 용기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생식기능·능력이나 이야기하는 저출생 대책을 보면 있던 용기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한다고 낳겠냐'라는 오기마저 생길 판입니다. 정부·지자체가 내는 대책에 저 같은 사람이 조금은 솔깃해져야 하는데, 이쯤 되면 어떤 기대도 접게 됩니다.

살기도 싫은데 낳으라고
 

정치하는 엄마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회원들이 지난 2021년 3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43%로 급증한 20대 여성 자살율의 사회적 문제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 이희훈

 
애초에 한국은 이미 태어난 사람조차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2021년 청와대 앞에서 열렸던 여성의날 기자회견을 취재할 때였습니다. '살기도 싫은데 낳으라고'라는 문구가 눈에 띄더군요. 한창 2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가 주목받을 때였습니다.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입니다.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고,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2021년 대한신경과학회는 1992년부터 2005년 사이의 자살자 수와 출생아 수가 매우 강한 역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지적하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더 심각한 상황은 2030 여성, 즉 사회가 출산을 기대하는 세대의 자살률과 자살시도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의 논문 '노동시장에서의 위기심화와 청년여성 자살률'은, 2018년 이후 꾸준히 20~30대 여성 청년 자살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2017년 대비 2021년 자살률의 경우 20~29세 여성은 71.9%, 30~39세 여성은 27.8% 급증했습니다(남성은 20~29세 30.3%, 30~39세 3.1% 증가했습니다). 

이 교수는 실업률이 아닌 2017년 이후 비정규직 비율과 시간제 비율, 2017년 이후 25세 이상, 30대 청년 여성의 니트(구직 단념자) 비율과 자살률이 정의 관계(비례)를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2018년도부터 더욱 심화된 노동시장 내 청년여성의 위기와 그로 인한 절망이 자살률을 설명하는 주요한 요인"이라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청년여성은 노동시장 내에서 더욱 주변화되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살률 자체는 남성이 더 높지만, 자해·자살시도 비율(2023 자살예방백서)은 여성이 더 높습니다. 2021년 기준 20대 여성은 7976건(남성은 3360건)로 2020년(6866건)보다 1100건 이상 늘어났습니다. 30대 여성은 3321건(남성은 1924건)으로 2020년(3293건)과 비슷했습니다. 이는 우울증 유병률과도 비례합니다. 남인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자료를 살펴보더라도 2018년 대비 20대 여성은 110.65%, 30대 여성은 84.12% 급증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청년들, 특히 여성들에게 '애 낳으라'라고 요구하기만 할 뿐, 정작 그들의 노동 환경을 비롯해 사회적 불안이나 정신적 고통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목숨을 끊고자 하는 이들까지 나오는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가 많이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돌봄이 부재한 사회, 알빠노와 누칼협만 들끓는다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2022년 5월 18일 창원에서 "돌봄 국가책임, 공공성 강화, 돌봄노동자 고용안정 적정임금 보장 촉구” 관련 활동을 벌이는 모습. ⓒ 윤성효


한국 사회는 비뚤어져 있습니다. 이는 경제 수준이나 사회의 발전 정도와도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버티지를 못하게 만듭니다. '네가 못한 것은 오직 네 탓'이라는 마인드가 사회에 팽배합니다. 도와줘야 할 상황에서 '민폐'라고 욕을 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죽비를 내리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야)',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같은 말이 온라인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현시대를 상징하는 적확한 말이기 때문이겠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도래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각자도생'을 일종의 생존 모델로 채택한 이후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갔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이들조차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무너지면 어디선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불안이 심화됩니다. '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역시 온전히 내 책임이 될 뿐이니, 리스크가 큰 행위가 됩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돌봄의 절차나 항목은 늘어나는데, 돌봄을 공공화·사회화하는 시스템도 온전히 갖춰지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개인의 부담만 커지는 것이죠. 

저출생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또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며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인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상호부조와 연대의 가치가 상실된 사회에서는 약자들부터 힘들어집니다. 여성과 아이가 살기 어려워지니, 출산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요. 

얼마 전에 영국 런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습니다.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은 어딜 가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반려견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거나 작은 소란을 피워도 특별히 통제하지 않았고, 반려견들도 대중교통을 타거나 가게 등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이 저는 한 사회가 약한 존재들을 돌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그렇게나 아이가 절실하다고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정작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울거나 떠들면 정색하고 부모와 아이를 욕합니다. 카페나 식당에서도 '노키즈존'을 만들어 입장을 막습니다. 이런 행위를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무슨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더불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자괴감만 늘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도적 돌봄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가 믿음직스럽지도 않습니다.

2017년 낙태죄 폐지 이전에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에서 피켓에 적힌 한마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니들이 별짓 다 해봐라, 내가 애 낳나 진짬뽕 사 먹지." 광고 패러디 문구였던 이 말이 '시대정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차라리 진짬뽕이라도 잘 먹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은 아프지 않고, 버텨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새로운 아이의 탄생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의 얼굴에선 생기가 사라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저출생 시대, 정훈님의 최근 고민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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