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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25 전쟁이 발발한지 73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남북이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북쪽의 침략 근성은 더 극성이고, 아무리 화해하고 친선을 도모해도 그들은 호시탐탐 적화만을 노리고 있는 점 또한 그러하다.

우리 민족 간 전쟁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남겨둔 비극이었다.

인천상륙작전 덕에 북진하던 그때, 함흥지역에 살던 열아홉 청년이 '1.4 후퇴'에 묻어서 남쪽지역으로 홀로 내려왔다.

그는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살기 위한 여정에 대해 여러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제주도 훈련소와 동해안 쪽에 배치되어 수많은 육박전을 포함한 전투 사례와 전쟁 후반엔 투입된 학도병들이 하루 저녁 치열한 전투가 지나고 나면 열에 아홉은 사망하고 한 둘이 남았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었다.

중공군과 격전에서 겁을 먹은 보초가 달아나는 바람에 벙커 안에 있던 분대 전원이 포로로 잡혀 밤새 탈출했던 기억과 후퇴 중 강물을 만나 버들가지를 꺾은 뒤 휘어 우비를 두르고 강을 건넜다는 일화 등이다.

끊임없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층 구미를 당기는 순간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죽고 사는 현장의 일 중에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평생 군 생활에만 열중하다가 강원도에서 결혼 후 아이들이 생겨 전역한 이후엔 뼈가 닳도록 농사일에 매진하느라 편할 날이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매사가 서툴렀다. 하지만 상이용사와 나환자, 그리고 탈영병이 생기면 모두 우리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를 찾았다. 때때로 같은 밥상에 앉은 상이용사의 집게 손가락과 뭉툭한 나환자의 손가락이 무서웠다.

논밭에서 잡아 온 알 수도 없이 겁먹은 젊은 탈영병을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께 밥상을 부탁해서 밥을 먹이곤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고,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서 부대로 돌아가라'고 하셨던 아버지.

탈영병을 데리러 온 헌병들에겐 "부대에 연락해서 보내주고 특히, 때리거나 윽박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 해서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지역 토호들의 득세가 만만치 않던 시절이라 겨울철이면 '술 먹자, 화투하자'며 시비를 당하다 큰일을 당한 적도 있었고, 고분하지 않자 북에서 왔다고 술 취한 인근 주민들이 '빨갱이'라고 소리지르며 시비한 일은 다반사였다.

결국 월남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끝내 이방인으로 살면서 숱한 고난을 겪다가 6.25 참전 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말년에 '국가 유공자' 신청서를 당신이 직접 작성하여 보훈처에 제출했을 때, 또 한 번 절망하고 말았다. 당시 참전 인물로 2인 이상 인우보증을 해야 한다고.

온몸에 파편 자국 등은 아직도 성성하나 야전병원 일지도 없고 인우보증인도 없으니 인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전장 터에서 보증할 전우들이 모두 전사했는데, 누가 보증할 수 있느냐?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 그들이 살아 있다면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도 두 번이나 더 냈지만, 보훈청은 회신 한 장으로 끝이었다.

구순 중반이 되어서 어머니 입원으로 석 달을 용인 인근 모 요양원에 의탁했을 때, 호랑이 같던 노인에게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야 하고 먹다가 흘리거나 거부하면 숟갈로 가슴을 때렸다고 한다. 숟가락의 무게와 절망이 더해져 상처 난 가슴팍엔 나날이 통증이 더해 왔더랬다.

더구나 6.25 참전으로 불사신같이 살아남아 국가 보위에 큰 자부를 느끼며 살던 노인이 살기 좋은 조국 땅에서 받은 노병에 대한 마지막 대우는 치욕스런 숟갈 고문이었으니, 요양원으로 보낸 자식들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작년 10월 말경 퇴원을 하고 나서 올해 3월까지도 가슴의 상처는 낫지를 않았고, 5월 말경 불시에 숙환으로 한 많은 이 시대의 영웅은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혼란하던 시대, 1928년생 북쪽의 한 젊은이가 역사의 틈바구니에 휘말리며 일생을 일제와 전쟁에 시달리다가 끝내, 진정한 유공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혼자 분투하다가 눈을 감았다. 이제 몇이나 조국 수호를 위해 분투하시던 영웅들이 남았을 것인가. 그들이 진정 대한민국 조국의 수호신이다.
 
함동수 시인
 함동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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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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