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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부터 전국에 자리 잡아 온 혁신학교. 이제 청년이 된 혁신학교 졸업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들의 삶에 혁신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교육기자들이 모두 19명의 혁신학교 졸업생들을 직접 만난다. [기자말]
노근영씨가 11월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교내 서점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보고 있다.
 노근영씨가 11월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교내 서점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보고 있다.
ⓒ 교육언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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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여름 같은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특수교육과에 재학 중인 노근영(20학번)씨를 만났다.

앳된 얼굴에 목소리는 카랑카랑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자신을 "반듯한 모범생이었다"고 소개했다. 학교가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따랐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4개의 일반고 지망 순위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의 지망은 보기 좋게 모두 비켜 가고,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혁신학교인 선사고등학교에 배정됐다. 2011년 개교한 선사고는 송파구에서 고등학교 중 유일한 혁신학교였다.

"선사고에 배정된 친구 중에는 우는 친구도 있었어요. 주위에서는 '좋은 대학교 가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등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사실 그때는 선사고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2017년 입학식 날부터 '반듯한 모범생'은 '반듯'하지 못한 학교가 좋았다.

"대개 학교는 입학식 때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을 뽑아 입학서를 대표로 주잖아요. 그런데 선사고는 학생의 이름 가나다순으로 가장 빠른 학생과 가장 늦은 학생 두 명을 대표로 뽑아서 입학서를 주었어요. 학교가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겠다는 의미로 느껴져 학교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학교의 교가였다.

"교사와 학생의 벽을 허무는 곳, 서로의 인권과 개성이 존중되는 곳... 우리 서로 두 손 맞잡고 함께 한다면 두려움은 없어...."

대개 학교의 교가는 '진리', '봉사', '기상' 등 고상한 단어를 반복하며 사회적 윤리 또는 학교의 기풍이나 건학정신을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의 상호 존중, 학생과 학생의 상호 협력의 내용이 담긴 선사고의 교가를 부르며, 그는 "학교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는 질문에 선뜻 "선생님"이라며 세 명의 선생님을 꼽았다.

"배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는 생명과학 선생님은 수업시간 중 학교 인근 한강변 등으로 다니며 비둘기 둥지를 살폈다. 그리고 두루미를 보기 위해 비무장지대(DMZ)까지 다녀왔다. 그러면서 생명의 서식지를 살피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환경에 대한 지식과 환경 보호를 위해 실천하는 법을 함께 알아갔다. 그는 "환경 교육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며 배워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지리 선생님은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사회 실제 사건과 연계하여 설명해줬다.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과 넓은 시야를 배웠다"고 했다. 수학 선생님의 눈에는 항상 사랑이 묻어났다고 했다. "학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고 소회했다.

그는 이들 세 명의 선생님을 돌아보며 "공교육의 희망은 살아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교사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힘"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묻는 교육 방식
 
노근영씨가 비건동아리 회원 모집을 위해 직접 만들었던 홍보물
 노근영씨가 비건동아리 회원 모집을 위해 직접 만들었던 홍보물
ⓒ 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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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교육의 특징에 대해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끊임없이 묻는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의 지도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데 익숙했던 그는 선사고에서 '너가 하고 싶은 거 해봐, 그러면 선생님이 도와줄게'라는 지도 방식이 신선했다고 했다.

1학년 수업 때 축산업의 폐해를 고발한 환경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감상했다. 그때 "고기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는 비건(채식주의)동아리를 만들었다. 친구들과 비건과 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비건만두를 직접 만들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황윤 감독을 초청해 함께 나누기도 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비건동아리에 가입했다.

2학년 때에는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있는 친구와 함께, 위안부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작은 손거울을 구입한 뒤 뒷면에 소녀상이나 꽃 등 위안부 할머니 관련 그림을 그려 다시 팔았다. 수익금 30만 원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특수교육 교사의 꿈을 키운 계기를 묻자 초등학교 5학년 때 짝꿍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적 장애였던 짝꿍을 위해 쉬는 시간마다 수업 내용을 반복해서 들려주면서 그 친구가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와 공부할 때는 잘 풀던 문제도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집중력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를 풀다 말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는 문제도 풀지 못한 채 답안지를 제출했어요. 이후에도 몇몇 장애 친구를 보면서, 장애가 있는 친구도 누구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재능을 살려주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특수교사의 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결국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과를 선택했다. 특수교육 이외 교육공학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해 현재 "대학교 5학년생"이라고 했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의 교생실습을 마치고 오는 11월에 있을 임용고시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한 특수학교에서 교생 실습하면서 험난한 특수교사의 실제 학교생활을 체험했다. 특수교사는 한 과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장애 유형과 정도가 제각각인 학생을 위해 맞춤형 개별 수업을 준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각오를 새로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노근영씨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노근영씨
ⓒ 교육언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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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에는 모교인 선사고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실습을 마치고 "어디에 가도 선사고 같은 학교는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는 아쉬운 인사말에 선생님은 "근영아, 너가 선사고 같은 학교를 만들어 봐"라고 했다. 그는 뒤돌아 학교를 나오면서 "또 하나의 꿈이 생기는 희망과 용기의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혁신학교인 모교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혁신학교 진학을 망설이는 후배에게 "망설이지 말고,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어떤 이상한 마라톤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마라톤은 참가자가 한 방향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서 뛰어요. 그처럼 뛰는 길이 다양하면 1등도 여러 명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학벌이나 입시만 향해서 뛸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다양한 트랙으로 학생들이 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혁신학교인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언론창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혁신학교, #선사고등학교, #교육언론창윤두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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