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 [기자말] |
인천에서 태어나 25세까지 쭉 살았던 김승현씨는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이 운영하는 함양군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2022년 10월 이름도 모르던 경남 함양에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2주 프로그램을 마치고서 함양이 좋았던 김승현씨는 추가로 2주를 지역신문 <주간함양>의 인턴기자로 보내고 추가로 한 달 반 지역팝업식당 '함무랑'을 운영했다. 이는 승현씨에게 함양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의 시발점이 됐다. 프로그램으로 보냈던 2주는 여행지로 바라보는 함양이었다.
"그땐 그냥 잠깐 살아보는 곳이었는데, 주간함양의 인턴으로 살았던 2주는 삶의 터전으로써의 함양이었어요. '사람들이 함양에 살고 있구나'하는 생동감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에는 놀러만 와봤다는 승현씨. 인턴기자 활동을 통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맨 처음에 국장님께서 양민희생자 관련 기사 교정을 부탁하셨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함양에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런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됐고 저도 삶의 터전으로 함양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조금 더 살아보고 싶던 차에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그렇게 전입까지 하게 됐어요."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주거와 일자리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승현씨는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함양청년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언니들이 이젠 어디 가서 방송작가라고 말하지 말라고 그래요. 어느새 방송작가로 지낸 기간보다 함양에서의 삶이 더 길어졌어요."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던 김승현씨는 각종 과대광고와 사기광고에 점철된 광고업계에 환멸을 느끼고 방송작가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선택한 분야는 교양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그렇게 2년을 방송작가로 일했다.
"EBS의 한국기행과 건축탐구 집 프로그램 방송작가를 제일 오래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아름다운지, 흥미로운지 이 시기에 알게 됐어요.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제 연락처에 천 명의 연락처가 늘었거든요. 천 명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알아가는 순간순간이 재밌고 행복했어요."
재밌고 즐거운 함양의 삶, 함양의 정
막내작가에서 입봉작가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쉴 겸 선택했던 '고마워, 할매'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이어져 함양의 삶이 벌써 2년이 다되어간다.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작가님들이 '너 올해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작가 일 다시 못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작가는 나이를 꽤 많이 신경 쓰거든요. 그래서 정말 고민돼요."
경력단절의 위기와 안정적이지 못한 함양의 일자리 상황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건 그만큼 함양에서 보내는 삶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함양의 삶이 즐거운 이유는 함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 때문이다. 승현씨는 "함양군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를 진행하면서 사람간의 정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남계마을에 명월 할머니라고 22년도 10월에 네 번 정도 만난 할머니가 있어요. 마지막 만남에 '할머니 나중에 봬요!'하고 헤어졌는데 1년 뒤에 연락할 이유가 있어서 '할머니, 저 그 때 엄지예요!'하고 전화를 드렸더니 정말 반갑게 받아주시면서 몇 번이나 전화를 걸고 싶었는데 제가 바쁠까봐 못 걸었고 이렇게 연락줘서 고맙고 언제 한 번 찾아오라고, 저번에 우리 여름에 계곡 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같이 가자고 이렇게 와다다다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 찾아뵀었거든요. 막 이야기 나누다가 가려고 하는데 '이것 챙겨가라'며 바리바리 짐을 싸주시고. 이 때 진짜 제가 손녀가 된 느낌이었어요."
택배분실사고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신고를 통해 경찰이 현장에 왔는데 하필 장날이라 사람들이 꽤 붐볐다.
"장날에 경찰과 함께 있으니까 건어물가게 아저씨, 생선가게 아저씨, 쌀집 아줌마, 이불집 아줌마, 미용실 아줌마 전부 다 쳐다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분한분 슬쩍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고요. '택배가 사라졌어요. 혹시 보셨어요?' 말하면 못봤다고 어떡하냐고 걱정해주셨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열 번은 넘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다음 장날이 됐을 때 대화를 나눴던 주변 어른들이 오셔서 택배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해주고 괜찮냐고 위로해주시는 모습이 좋았어요."
승현씨는 온 동네가 걱정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에 살 적에는 관심도 불편하고 경계하게 되었지만 지역에서는 그런 관심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의 청년모임에서는 승현씨 뿐만 아니라 '고마워, 할매'에 참가한 다른 청년들도 지역만의 특별한 연대나 정을 느꼈다.
"작년에도 이소 모임에 참가했던 청년들이 다 그런 이야길 했어요. '함양에도 이런 모임이 있네', '청년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연대감이 있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 그 안에 제가 속해있다는 것도 뿌듯했어요."
함양청년 승현씨, 주소는 삼휴마을
삼휴마을로 전입신고를 처음 한 승현씨는 이장선거가 있다는 말에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도 드릴 겸 참석했으나 쫓겨나는 일을 겪었다. 그 이후 있던 마을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겪은 건 사실 시골 텃세는 아니에요. 그냥 마을의 중요한 문제나 이권갈등 문제였어요. 주민들 대부분은 이 마을에서 거의 평생 사신 분들인데 행정신고 한 번 했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이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드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도 너무 강경하게 배척하는 건 조금 서운했어요."
지금은 승현씨도 삼휴마을 일원이 됐다.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지내는 요즘이다. "'이장 선거'나 '마을 회의'가 아니라 단순 인사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노하우가 부족했다"며 웃었다.
함양에서 평생 살 수 있냐는 질문에 승현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있다"고 답했다. 함양에는 승현씨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함양에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연이 있고 새로운 기회도 있어요. 함양은 도시와 다르게 기회의 공간이에요. 제가 도시에 있었다면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을 일들도 로컬에서는 다 시도해 볼 수 있어요. 두부를 직접 만들어본다던가 텀블벅 펀딩을 열어본다던가. 신문도 만들어보고요. 팝업식당 운영도 해보고요. 행복한 일도 많아요. '춤추는 머리카락' 미용실 단골도 되어보고. 소소한 지역의 축제들 공연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각자의 재능을 발휘해서 로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다 기억에 남아요. 이 모든 것들이 한 곳에 있는 함양에서 행복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