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4 13:23최종 업데이트 23.10.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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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 트럭의 놀라운 적재량 ⓒ 구교형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신체가 중요한 조건이 될 때가 많다. 큰 기계를 다루거나 높은 곳에 물건 쌓는 일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키 크고 덩치 좋은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꼭 크거나 건장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엎드리는 일을 반복하거나 좁은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 당연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편할 수 있다.

택배 일은 어떤 사람이 유리할까? 보통 키 크고 덩치 좋은 사람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우리 택배기사들은 큰 사람이 많지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체격조건이다. 물론 택배는 힘쓰는 일이 많아서 너무 체구가 작으면 힘겨울 것이다. 크고 무거운 물건 탓에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수월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신체 조건보다는 꾸준히 힘을 쓸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이 더 중요하다. 거의 모든 근육을 끊임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들고 옮기기에 손, 팔과 가슴 등 상체를 두루 사용한다.

또한 일반인들이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걷는다. 내가 처음 택배를 시작할 때 집을 못 찾고 헤매서 더 그랬겠지만, 뒤꿈치와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히는 일도 많았다. 만보기로 확인해 본 기사들 말로는 몇만 보는 기본이라고 한다. 또 조금씩 가서 승하차를 반복해야 하므로 트럭에 오르내릴 때도 힘이 적지 않게 든다. 나는 다른 기사들에 비해 차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보다 조금 더 걷는 편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일하겠다는 의욕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예전에, 경영하던 회사가 망해 무엇이든 하겠다며 한 기사가 새로 들어왔다. 그런데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해 보겠다는 의욕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몸도 느리고 설렁설렁 눈치 보고, 무엇보다 거의 매일 늦어 다른 기사가 대신 일을 해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두 달 정도 만에 그만두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가끔 내가 하루에 받아 소화하는 물량의 총무게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가 이용하는 트럭이 대부분 1톤이니 싣는 총중량이 분명히 1톤에는 못 미친다. 매일 다르겠지만 최소한 500kg은 족히 넘을 물량을 매일 싣고 내리고 옮기다 보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적재함 가득 채운 그 많던 물건이 어느새 다 비워진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1톤 트럭만 해도 밖에서 볼 때와 짐을 실을 때는 많이 다르다. 계속 쌓여가는 물건들을 보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양도 막상 적재함에 틈새까지 줄여가며 꼼꼼히 싣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다 들어간다. 1톤 트럭이 그렇게 대단한지는 택배하면서 알았다. 그러니 11톤 트럭은 얼마나 큰지는 상상에 맡긴다.

특히 물건이 많은 화요일, 우리 터미널 앞에 줄지어 늘어선 11톤 트럭들을 보노라면 그 늠름한 위용에 기가 질리고, 대형 트럭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사의 실력에 감탄한다. 어쩌다 11톤 트럭에 우리가 한 차 가득 집화해 온 물건을 실을 때면 1톤 트럭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고 큰 적재량에 새삼 놀란다.

체격보다 중요한 회복 속도

얘기가 다른 데로 좀 새어 나갔다. 택배 일에는 체격보다는 회복 속도가 중요하다. 아침에 물건이 몰아닥치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가 되면 배송도 나가기 전에 녹초가 될 만큼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다. 그날 배송할 모든 물건을 다 받고 내 트럭에 차분히 쌓아가는 과정에서 어느새 몸이 적응되고 방전에 가까웠던 힘이 다시 차오른다.

그렇게 적재를 다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가 화장실에서 참았던 용변을 보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잔 마시고 나면 거뜬히 그날 일을 시작할 의욕이 솟아난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며 몸이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몸 쓰는 일은 참 정직하고 뿌듯함을 안겨줄 때가 많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을 쓰라.

좀 우스운 얘기지만 배송하는 도중 키가 작아 좋을 때도 가끔 있다. 특히 좁은 골목, 오래된 주택가가 많은 서울 구로동과 가리봉동에서는 더욱 유리하다. 낮은 대문, 좁은 계단과 높은 난간을 올라 배송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물건을 양 겨드랑이 사이나 가슴 가득 움켜쥐고 오르내린다.

나도 이렇게 겨우 오르내리는데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기사들은 어떻게 다닐까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한다. 무게중심이 낮아 흔들림이 크지 않고, 좁은 곳을 지날 때도 무난한 나는 주택가 택배에 최적화된 몸이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곤 한다.

꾸며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매일 같은 동네, 비슷한 주택가를 반복해서 돌다 보면 자주 따분하고 질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화도 낸다.

그러나 그런 나도 가끔 자만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주택가 배송에 문을 열고 나선형으로 꼬인 좁은 계단 끝에 낮은 천정이 있다. 저 정도면 굳이 머리를 많이 숙이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는데 뜻밖에 이마에 부딪히는 것이다. '앗, 가끔은 내 키도 너무 크구나.'
 

나는 가리봉동 배송에 최적화된 몸이다(그림자). ⓒ 구교형


한국인들이 너무 커졌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키 얘기를 더 해 보자. 위로 누나만 넷이 있는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작았다. 한 반에 70명이 족히 넘는 콩나물 학급이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항상 1, 2번을 오르내렸다.

대개는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기 때문에 1, 2번인데 어쩌다 선생님이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매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도 '구/교/형'이라는 이름은 영락없이 1~3번을 오르내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6번을 한번 한 게 최고로 높은 번호였다.

사춘기 시절 키가 작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신체적인 열등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중학생이 되니 나도 몇 안 되는 여자 선생님들이 이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그분들에게 작은 학생은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럴 때마다 170cm를 훨씬 넘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불평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생각을 바꿨다.

키 큰 사람은 오히려 허울만 멀쩡하고 싱거운 사람이고, 나처럼 작은 사람이야말로 단단하고 알찬 사람이라고 스스로 세뇌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청년이 될 무렵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이 변해 어느새 신체에 대한 열등감이 진짜 사라져 버렸다. 키 작은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먼저 농담을 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지니 사람들도 오히려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인들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언젠가부터 180cm가 안 되는 남자는 '루저'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젊은 세대가 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180cm 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랴 싶었다. 나는 키재기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교회에 속속 180cm 넘는 청년들이 출석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실감이  됐다. 나는 청년들과 장난을 잘 쳤기에 우리는 곧잘 서로 놀리곤 했다. 내가 한 청년 이름을 부르면 그는 여기저기 찾는 흉내를 내며 "목사님, 어디 계세요? 목소리는 들리는데 왜 안 보이시죠?"라고 한다. 나도 일부러 손을 들고 깡충깡충 뛰면서 "나 여기 있잖아. 안 보여?" 하면, "네, 안 보여요. 분명히 소리는 들리는데"라며 웃는다.

친해서 이처럼 농담하고 장난치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 즐긴다. 그러나 외모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정중하지만 분명히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예의도 아니고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육체노동이 주는 삶의 교훈은 참으로 깊고 풍성하다.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디모데전서 4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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