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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멸종한 크낙새 암·수컷
▲ 50년 전에 멸종한 크낙새 암·수컷 50년 전에 멸종한 크낙새 암·수컷
ⓒ 일러스트 최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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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봄날 산행을 했다. 나는 회갈색에서 점점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봄 산을 각별히 좋아한다. 평일인데다 오전에 비가 세차게 퍼부은 뒤라, 하늘은 더없이 쾌청했고 등산객은 거의 없었다. 나지막한 산길을 골라 걸었다. 막 돋아나는 여린 잎들이 꽃보다 아름다웠고, 여기저기 산벚나무가 화사한 꽃을 틔우며 '나 여기 있어요' 소리 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겨울을 벗어버리고 봄을 다투어 갈아입는 숲을 보며 멈춰 서서 감탄하다 걷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따르르르륵, 따르르르륵, 고갤 들어 소리 나는 곳을 찾으니 참나무 줄기에 오색딱다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둥지를 파고 있었다. 친구에게 새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쌍안경을 건네줬다.
 
"저렇게 예쁜 새가 딱다구리라고? 와, 딱다구리 정말 아름답네."

딱다구리가 한참이나 부리로 나무를 쪼다가 어딘가로 휙 날아갈 때까지 친구는 목이 아프도록 쳐다보며 끝없이 감탄했다. 난생처음 딱다구리를 본 친구의 소감은 '아름답다'가 전부였다.

우리 숲에 딱다구리가 산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 역시 친구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무줄기를 네 발가락으로 움켜쥔 채 부리로 따르르르륵 쪼는 새, 동그란 구멍을 뚫어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기르는 새,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며 벌레를 콕콕 잡아먹는 딱다구리가 우리 숲에 산다.

나무에 구멍을 뚫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신기한데 그 구멍이 숲속 동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더욱 각별하다. 딱다구리가 파놓은 둥지는 단지 딱다구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 산책길에 은사시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우듬지를 보려면 머리를 거의 45도 가까이 젖혀야 할 정도로 키가 크다. 재작년에 아주 우연히 그 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위쪽 구멍에서 동고비의 흔적을 발견했다. 딱다구리가 뚫어 놓은 구멍을 제 몸에 맞도록 진흙으로 입구를 좁히는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동고비 부부는 봄부터 여름까지 그곳에서 새끼를 길러냈다.

딱다구리 둥지는 숲의 공유자원인 셈이다. 딱다구리가 살던 둥지는 소쩍새, 하늘다람쥐, 다람쥐, 호반새, 원앙 등 적어도 15종 이상의 동물들이 번식 둥지로 재사용한다. 한번은 다람쥐 한 마리가 비가 내리는 날 둥지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한참이나 오도카니 있는 모습을 봤다.

딱다구리는 대체로 비가 들이치지 않고 볕도 잘 드는 곳에 둥지를 만든다. 숲에서 세대를 거쳐 살며 몸으로 터득한 풍수지리일 것이다. 그 안온한 거처를 숲에 사는 여러 동물이 무료로 사용한다. 둥지를 차지하려 치르는 소소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둥지를 얻기 위해서 그 정도야 감내해야 한다. 딱다구리는 의도치 않았겠으나 둥지 제조 기술로 숲에 넓은 우산을 펼쳐서 많은 생명이 그 아래에서 살 수 있도록 베푸는 위치에 있다. 만약 딱다구리가 숲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딱다구리가 번식 둥지를 지으려면 적어도 지름 30cm은 넘는 오래된 나무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 숲에서는 30년 이상 나이를 먹은 나무를 탄소 흡수력이 떨어진다며 베어버리고 어린나무를 심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을 방제한다며 온 숲에 살충제를 항공 살포한다. 꿀벌 집단폐사와 살충제 항공 살포의 인과관계를 따져볼 일인데도 벌이 채밀1할 나무 부족으로 원인을 돌리며 밀원2 숲 조성을 위해 숲을 밀어버리고 새로이 나무를 심는다.

딱다구리를 관찰해보면 이미 죽은 나무에 곧잘 둥지를 만든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죽어서 쓸모가 없으니 얼른 치워버려야겠지만 생을 다한 나무는 물러서 둥지를 파기에 더없이 좋다. 벌레도 많이 깃들어 딱다구리에겐 최상의 뷔페식당이다. 딱다구리와 곤충들이 쪼아대고 파놓은 나무에 버섯 등 분해자들이 찾아와 토양으로 순환시킨다. 건강한 생태계의 핵심은 선순환이다. 선순환에는 살아있는 건강한 나무도 죽은 나무도 모두 필요하다. 이 선순환에 딱다구리가 연결고리인 셈이다.

숲을 간섭하려는 인간의 손길을 거둬야 한다. 대체 어떻게 인간이 숲을 가꿀 수 있다는 걸까? 이런 관점이야말로 자연을 자원으로만 생각하는 태도 아닌가? 새로이 나무를 심고자 한다면 그곳은 숲이 아니라 도심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섯 종류의 딱다구리가 살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일곱 종이었지만 크낙새를 잃었다. 서식지가 망가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딱다구리의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활기차게 느껴지면 완연한 봄이다. 이 소리를 세대를 이어서 언제까지고 우리 숲에서 듣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딱다구리보전회'를 꾸렸다. 우리 숲에 딱다구리가 산다는 것을 알리고 딱다구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지, 숲속 커먼스3를 나누며 사는 새들의 공동체를 이해하게 된다면 사람들 마음 안에 딱다구리가 한 마리씩 살게 되지 않을까?

딱다구리보전회는 4월 27일을 딱다구리의 날로 선포했다. 딱다구리의 안부를, 우리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시민이 점점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1. 꿀을 뜸
2. 벌이 꿀을 모아 오는 원천
3. 공유자원

덧붙이는 글 |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생태, #숲, #딱다구리, #딱다구리보전회, #딱다구리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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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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