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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칠보면 원촌마을 보리밭 등대
 정읍 칠보면 원촌마을 보리밭 등대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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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칠보면에 있는 무성서원은 신라 말기에 이곳 태산 군수였던 최치원을 추모하는 생사당인 태산사에서 기원한다. 삼국 시대부터의 음악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를 탐구한 역사가 권희덕(전북 전주시 호성동)씨는 정읍의 옹동면, 산내면과 칠보면이 신라와 고려시대에 당(唐)과 송(宋)의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음악과 춤 등 전통 예술이 일찍부터 발달한 지역이었다고 말한다. 

당과 송의 사신들이 머물렀다는 장소와 혹시 남겨져 있을 유적을 찾아보고 싶어서, 태산 문화를 탐방하는 답사 여행의 첫 장소로 무성서원을 찾았다. 무성서원을 둘러보고 정극인 시비를 향하는 길에 뜻밖의 이색적인 풍경을 만났다.

골목길 담벼락에 바다의 바위섬과 등대가 그려져 있었고 작은 배가 항해하고 있었다. 5월 초순의 들녘, 이삭이 패어 오르는 보리밭에는 등대, 무종(霧鐘, Fog Bell)과 우체통들이 세워져 있었다. 
 
짝사랑 빠른 엽서를 부치는 초록색 우체통
 짝사랑 빠른 엽서를 부치는 초록색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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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표류하며 방황할 때 찾아오는 사랑은 등대처럼 방향을 제시하여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골목길의 벽화에는 우편 배달부의 사랑 이야기가 씌어 있었다.  

50여 년 전 정읍 옹동면에 우편배달을 하는 총각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우체국 자전거를 타고 편지 배달을 나갔다가 예쁜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마을에 편지 배달한다는 핑계로 매일 그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배달하였다. 마침내 총각과 아가씨는 사랑을 이루어 결혼하고 50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은 아내와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워하며 빨간색 우체통이 되어갔고,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영원한 사랑으로 마을 골목길의 벽화에 새겨졌다.

보리밭 이랑에 초록색 우체통과 빨간색 우체통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녹색 화살표를 풍향계처럼 이고 있는 초록색 우체통은 짝사랑의 빠른 엽서를 넣는 곳이고, 친숙한 모양의 빨간색 우체통은 사랑의 고백이나 영원한 사랑의 느린 엽서를 넣는 곳이란다. 보리밭을 바라보는 카페에서 엽서를 구입할 수 있다.
 
사랑의 고백과 영원한 사랑의 느린 엽서를 부치는 빨간색 우체통
 사랑의 고백과 영원한 사랑의 느린 엽서를 부치는 빨간색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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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인의 상춘곡 시비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리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러 있었다.

역사가 권희덕씨는 한글 가사 정극인의 상춘곡을 비롯하여, 한글 가요 정읍사, 한문 유머집 송세림의 고금소총, 태인 용장사의 한글 화엄경, 최초의 한글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와 한글 소설 홍길동전 등이 최초로 발행된 이곳 정읍 태산문화권은 한글문화를 의미 있게 태동시킨 지역이었다고 말한다. 태산 문화권을 처음 찾은 탐방 여행인데 산골 보리밭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바다의 등대 조형물을 뜻밖에 만나다니, 마치 이른 아침에 반가운 까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보리밭 이랑의 등대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바다에 안개가 짙어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없을 때 종을 쳐서 항해하는 배에 등대의 위치를 알리는 종탑이 담담하게 머물러 있었다. 네 개의 기둥이 받치는 종탑에 매달려 있는 무종에서 망치로 정성껏 두드리는 은은하고 긴 여운의 종소리가 울려 나오는 듯했다.

카페에 들어가 엽서를 구입하고, 여유롭게 정읍 쌍화차를 마시고 싶었다. 이 마음 저물어 등대가 되고 싶으니, 보리 이삭이 사이에 보이는 깜부기조차 잊었던 추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안개 낀 날 종을 쳐서 등대를 대신한 종탑의 무종
 안개 낀 날 종을 쳐서 등대를 대신한 종탑의 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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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리밭과등대, #등대와무종, #정극인상춘곡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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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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