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30 11:57최종 업데이트 24.06.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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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 (2005.5.31) ⓒ 연합뉴스

 

ⓒ 최주혜

 
2020년 3월 6일, 육군 3사단 예하 대대에서 11명의 병사가 휴대전화 사용 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었고, 규정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자정, 술에 취한 대대장이 부대로 들어와 대대원 300명을 전부 연병장으로 집합시켰다. 그리곤 기강이 해이하다며 얼차려를 실시했다. 잠을 자다 불려 나온 병사들은 1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위병소까지 선착순 달리기를 했다.

그날 오후, 대대장은 또 병사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간밤에 부여한 얼차려를 또 실시했다. 병사들 중 한 사람을 집어내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100M 전력 질주 달리기를 반복시켰다. 뛰던 병사가 숨을 헐떡이자 대대장은 의무병에게 심장충격기(제세동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하더니 "제세동기가 있으니 쓰러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의 문제제기로 대대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가장 낮은 수준의 '견책' 징계가 고작이었다.


얼차려는 정식 징계 절차가 아니다. 지휘관 판단하에 부하들에게 일정 수준의 신체적 고통을 부여함으로써 훈육의 효과를 얻고자 만들어진 제도다. 옛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기합 주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때문에 아무리 제도와 규정으로 통제한다지만 페널티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징계와는 달리 집행 과정에서 판단 주체인 지휘관의 감정이나 주관이 실릴 수밖에 없다. 휘하 병사들 일부가 지시 사항을 위반했다고 술에 취해 대대 총원을 이틀씩이나 가혹하게 괴롭힌 이상한 대대장이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특성상 얼차려와 가혹행위가 한 끗 차이란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법률로 규정한 얼차려? 그러면 뭐하나
 

지난 27일 강원 인제군의 모 부대 위병소 위로 먹구름이 드리워 있다. 이 부대에서는 최근 훈련병이 군기 훈련을 받다가 쓰러진 뒤 이틀 만에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 연합뉴스

 
얼마 뒤 군은 얼차려의 명칭을 '군기훈련'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참모총장들이 제·개정 할 수 있는 각 군 규정을 근거로 실시되던 얼차려는 상위법인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제38조의2(군기훈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법률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물론 법 개정 전의 '얼차려'도 지휘관 맘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법률 개정 전의 '얼차려'나 개정 후의 '군기훈련'이나 종류와 방법은 각 군 규정을 따르긴 마찬가지다. 현행법도 종류와 방법은 각 군 규정에 위임하고 있다. 법률로 군기훈련을 명문화하면서 새로 생긴 건 '군기훈련을 실시한 지휘관은 매년 2월 말까지 전년도 군기훈련 실시 결과를 장성급 지휘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정도다.

때문에 각급부대 지휘관은 매년 군기훈련의 실시 사유, 횟수, 대상, 시기, 장소, 방법을 장성급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있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얼차려가 각급 부대에서 지휘관 마음대로, 함부로 실시할 수 없도록 법률로 장성급 부대에 지휘·감독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4년 5월 23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던 훈련병이 쓰러져 후송되었고, 이틀 뒤인 25일에 사망했다. 현재 군기훈련은 시행할 수 있는 종류와 방법이 다 규정돼 있다. 그런데 해당부대 간부는 입대 9일 차 훈련병 6명에게 규정에도 없는 가혹한 완전군장 팔굽혀펴기, 선착순 달리기, 완전군장 뜀걸음을 시켰다. 그러던 중 한 명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 보여 다른 훈련병들이 이를 간부에게 알렸으나 무시당했고, 결국 사망 사건으로 이어졌다. 법률로 얼차려를 규정하면 가혹행위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번엔 더 나아가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다시 '얼차려'가 주목받고 있다. 사건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장성급 지휘관에게 지휘·감독권을 부여해봐야 별반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만약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집행 간부는 이번 얼차려를 상부에 '정상적'으로 꾸며 보고했을 것이다.

이는 비단 12사단 신교대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규정을 위반한 얼차려가 암암리에 규정과 절차에 입각한 정상적 군기훈련으로 꾸며져 보고되고 있다. 장성급 부대에서 군기훈련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러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보고도 1년 치 군기훈련 실시 현황을 한꺼번에 사후보고 하는 식이라 실효적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름만 군기훈련이라 바꿨을 뿐, 여전히 명령권자와 집행자의 감정과 판단에 따라 가혹행위가 될 소지가 충분한 셈이다.

조만간 군은 후속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법률과 시행령을 개정하고 복잡다단한 매뉴얼을 만든다며 수선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늘 그렇게 대처한다. 얼차려 종류와 방법을 법률이나 시행령으로 격상해서 규정하고, 지휘·감독 의무를 강화한답시고 상급부대에서 때마다 감독자를 보내게 하거나, 아예 얼차려 실시 주체를 상급부대로 올리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건 대책이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타인의 심신에 고통을 부여하는 훈육·교정 방식은 객관적일 수가 없다. 고통을 부여하는 사람의 주관과 감정이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대다수의 국가들이 범죄자들을 고문하거나 때리지 않고 일정 장소에 가두어 두는 방식으로 징벌하거나 금전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더 이상 체벌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불이익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얼차려를 폐지하자
 

서울의 한 터미널 인근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얼차려 자체를 폐지하는 것을 고민해 봐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 심신에 고통을 주는 위험한 훈육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게 효과적인 훈육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얼차려를 없애자고 하면 군대의 특수성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십 년 전, 윤 일병 사건이 터지고 군대에서 구타를 없애자고 할 때도 똑같이 '특수성'을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군인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고, 군인다워진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군에서 악성 구타 사건이 많이 줄어든 지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폭력이 기강을 세우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었듯, 얼차려도 유일한 훈육 수단이 아니다. 여태껏 우리 군이 다른 수단을 강구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남들이 기피하는 작업을 시킨다던가, 부대원들을 위해 근무 외로 봉사하게 하는 등 고통이 수반되지 않고도 충분히 페널티를 부과해 훈육과 반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지금은 얼차려의 제도적 미비점을 따질 때가 아니다. 제도적 보완은 이미 실패했고,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제2, 제3의 참사를 막는 방법은 얼차려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할 훈육 방안을 찾는 것이다. 군 스스로 '군인에겐 얼차려가 당연하다'는 타성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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