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3 07:11최종 업데이트 24.06.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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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요즘 의료가 핫이슈다. 윤석열 정부의 의사 2천 명 증원과 의료정책 개정에 의사들이 반발하여 전공의와 전임의, 교수들까지 사퇴에 나섰다. 정부가 의료계 없는 의료개혁특위를 출범시킨 와중에 의-정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많은 논의가 오갔지만 충분한 공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의료정책에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은 주로 의대 정원, 더해서 상급 종합병원에 관해서였다. 하지만 의료의 범위는 넓다. 의료체계의 진정한 개혁을 바란다면 특정 부문만이 아니라 의료의 다양한 지점들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중심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다양한 의료를 논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 예로 의료전달체계, 지역의료, 일차의료, 소수자의료 등이 있겠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일차의료 및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논의를 더하고 싶다.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부천의료사협)에서 운영하는 부천시민의원에서 2년간 일차진료 의사로 근무했다. 부천의료사협은 마을 주민의 건강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를 아는 주치의'를 슬로건으로 의원부터 시작해 재택의료센터, 장애인주치의 등 여러 방면으로 의료와 돌봄을 제공한다. 또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와 건강활동, 학생들과 함께하는 지역 의료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장애인 활동지원센터를 운영한다.

지역 의원 경험으로 일차의료 역할 깨달아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차진료 의사로 일하며 감기, 장염 등 가벼운 질환을 치료하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관리했다. 또 청소년 대상 건강 강의, 주민 대상 의료봉사 등 지역 사업에도 참여했다. 다른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들도 주치의 활동과 다양한 건강 사업을 진행한다. 모든 일차의료기관이 의료사협이 될 순 없겠지만, 의료사협은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화두를 던진다.

부천의료사협 근무기간 동안 일차의료 의사의 역할이 정말 크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국 일차의료연구회에서는 일차의료의 개념을 최초 접촉, 포괄성, 관계의 지속성, 조정기능 등 4개의 핵심 속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치의는 환자가 자신의 건강 문제를 가장 먼저 상담할 수 있는 의료전문가이며, 환자에 대한 전인적 이해를 바탕으로 예방부터 치료까지 포괄적으로 관여하고, 의사-환자 관계 형성을 통해 환자와 신뢰를 쌓으며,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 수준을 파악하여 일차의료기관에서 치료하거나 상급병원으로 의뢰할 수 있는 의사다.

내 경험 또한 그런 개념과 비슷했다. 첫째, 일차진료 의사는 만성질환 관리 등 주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다. 합병증이 따로 없는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은 동네의 일차의료기관에서 보는 게 가장 알맞고, 환자들에게도 좋다. 만성질환 환자들은 의원에 방문하고 상담하며 건강 습관을 지키는 것이 혈압, 당뇨 수치를 알맞게 조절하는 데에 유리하다. 이는 이후 합병증 등 건강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광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네의원 임형석 원장은 일차의료 포럼에서 "주치의의 개체 간 효과를 분석한 결과 주치의가 있을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예방접종 및 예방관리 비율이 36% 증가, 흡연이 37% 감소, 신체활동이 17% 증가하는 등 효용이 관찰됐다"며 "주치의를 보유한 사람은 주 150분 이상 중강도 이상 운동 실천율이 높고 미충족 의료를 더 적게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주민들이 자신의 질환에 대해 믿고 상담할 수 있는 의료전문가가 주치의다. 일차진료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질병을 삶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같이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다. 또한 환자와 오랜 기간 보며 환자-의사 관계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실제로 진료할 때 많은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세 번째, 일차의료 의사는 의료전달체계에서 의료자원이 적절히 배분될 수 있도록 환자들의 유입을 관리하는 게이트키퍼, 즉 문지기 역할을 한다. 모든 질병을 상급병원에서 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처치 받기 어렵다. 응급환자를 제외하고는 일차의료기관에서 치료할지 상급병원으로 전원할지 여부를 일차의료기관에서 결정하는 것이 다방면으로 더 효율적이다.

일차의료 의사에 게이트키퍼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게이트키퍼에서 나아가 조정기능을 가지고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방향을 제시하는 '게이트헬퍼'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역할을 일차의료 의사들이 수행할 때 주민들은 안심하고 일차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

의원, 전문병원, 대학병원들이 환자 유치 경쟁
 

지난 4월 1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내원객과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한국의 일차의료 현실은 어떨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건수는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OECD 평균의 2.6배) GDP 대비 경상 의료비 증가율도 10년간 연평균 약 8%로 OECD 평균의 2배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의료서비스가 넘쳐나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기관에서 주로 관리하는 당뇨병 환자가 합병증으로 입원하는 비율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2위이다. 인구 10만 명당 당뇨병 입원율이 OECD 회원국 평균은 129명이지만 한국은 245.2명으로 두 배 가까이 된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주치의 제도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주치의 보유 비율이 80~90%대에 이르고 있지만, 국내에서 기능적 일차의료 주치의가 있는 국민은 전체의 29.8%에 불과하다.

주치의 제도가 확립된 나라들에서는 동네의원=일차의료기관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의 전문 의원과 미용이나 통증클리닉 등의 비급여 의원을 제외하면 일차의료기관의 숫자는 확 줄어든다.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도 존재한다. 일차의료기관에서 경한 환자를,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이 중한 환자를 보는 전달체계가 있어야 각자에게 필요한 의료를 알맞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의원, 전문병원, 대학병원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더해 일차진료 의사들을 길러내는 수련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전공의들은 모두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병원 이윤을 위한 톱니바퀴의 구성품으로 과다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차진료 의사가 되는 과는 주로 내과 또는 가정의학과다. 내과 수련 과정은 입원환자, 특히 중한 환자를 위주로 한다.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은 좀 더 외래환자에 기반하지만, 다른 과를 배우기 위해 파견될 경우 마찬가지로 대학병원의 환자들을 보게 된다. 가정의학과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낮은 지원율이다. 2023년 가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54.1%로 미달이다. 이는 한국이 전문진료과 중심이며, 일차의료가 약하다는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좋은 주치의가 되려면 동네 주민들의 질환을 볼 기회가 충분히 있어야 하며,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환자를 전인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수련체계는 이를 성취하기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또는 개악) 안에는 이런 상황에 있는 일차의료를 개선할 의지가 매우 적어 보인다. 정책 안에 지역의료 강화도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정책들의 재탕이거나 실행이 어려운 정책들이다. 지역인재 전형의 확대를 내세웠지만 현재 지역 선발 학생들의 수도권 선호는 여전하다. 또한 장학금을 받고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사제는 그 전신인 공중보건 장학제도의 저조한 참여율로 보아 효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전달체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정부는 상급병원에서 2차 병원으로 회송할 때 회송수가로 보상한다는 등 각종 보상체계를 내세웠다. 수가 보상만으로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할 수 없다. '게이트헬퍼'(게이트키퍼) 주치의가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이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주치의'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설명 중 일부 ⓒ 보건복지부

 
정부는 중증, 응급, 소아, 분만을 '필수의료'로 규정하고 최우선 지원을 내세웠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를 인정하는 의료는 모두 필수의료다. 정부의 이러한 '필수의료' 언급은 상급종합병원 의료에만 초점을 맞춘다.

한편 윤석열 정부의 지금까지 행보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보다는 의료사업화로 인한 이익 보장을 추구하는 듯하다. 파업 후 비대면 진료 확대로 대기업들이 의료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포석을 깔았으며, 개인 건강정보를 민간기업에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법'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 감시해야
 

한국이 주치의 제도와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 셔터스톡


한국이 굳건한 주치의 제도와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주치의 제도를 활성화하려면 일차진료 의사들이 많이 필요하며, 일차진료 의사들을 양성하려면 좋은 일차의료기관과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 닭과 달걀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일차의료 확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주치의제도를 선도하고, 의사들을 공적으로 양성해 지역의료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학교육에서 생의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지역과 사회를 다뤄 학생과 전공의들이 환자를 전인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런 의사들이 일할 공공의료기관, 공공병원 및 공공의원을 강화해야 한다. 의사들 또한 지역의료와 일차의료에 대한 관심을 키워야 한다.

의료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코로나 사태나 의사 파업 등의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는 의료체계에 시선이 쏠리지만, 평소에는 다른 의제들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앞으로 의료가 우리 모두의 관심 속으로 들어왔으면 한다. 또한 의료 민영화 등으로 인해 자본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도록 눈뜨고 감시해야 한다. 의료는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복지이며 권리이다. 우리 모두에게 평등한, 양질의 의료를!
 

하정은 / 지방의료원 전공의 ⓒ 하정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하정은은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천시민의원에서 의사로 일했고, 현재는 한 지방의료원 전공의로 있습니다. 한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일차의료 및 공공의료 강화,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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