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5 14:29최종 업데이트 23.09.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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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통해 경험했듯 우리의 건강, 나아가 삶과 죽음의 불평등이 사회적·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은 마스크 대란과 백신 불평등 사례에서 보듯 국경을 넘어 지구적 수준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 '글로벌건강리포트'를 통해 탈세계화 혹은 재세계화 시대, 격변하는 국제정치경제 속에서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어떤 맥락에 처해 있는지 이슈별로 진단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정부가 저출생과 인구감소, 인력난을 이유로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주가사노동자 허용은 이 정책을 왜 추진해야 하는지 말끔한 해명조차 내놓지 못한 채 당장 올 하반기 시범사업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국익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정부에 시민사회는 인권침해를 들어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시민들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언론과 전문가는 짐짓 합리적인 어조로 국익과 인권의 균형을 말하지만, 실상은 내국인 노동자에게라면 내놓고 말하기도 어려울 조치를 이주노동자에게는 당연한 듯 부과하자고 제언한다.


여기에는 이주노동자가 중‧저소득국 출신이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 결과는 이주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 나아가 이주노동자의 출신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주노동자 이동 제한하고 미등록 단속하면 인력난 걱정 끝?
 

지난 8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대통령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국내 이주노동자 정책의 골자인 고용허가제를 '킬러규제'로 규정하며 '혁파방안'을 발표했다. 인력난을 겪는 업종·직종과 비수도권 사업장이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사업장별 이주노동자 고용 한도를 2배 이상 높이고, 연간 유입 규모(쿼터)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한다. 비수도권 소재 뿌리산업 중견기업, 택배·공항 지상조업의 상·하차 직종에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확대하고, 추후 호텔·콘도업(청소)과 음식점업(주방 보조)도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 발표용으로 재포장했을 뿐, 노동부는 이미 작년부터 고용허가제 허가 업종과 인원 확대를 추진해 왔다. 8월 24일 자 노동부 보도자료는 이러한 '규제혁신'에 따른 현장 변화 사례도 꼼꼼하게 소개한다. 높은 업무강도, 장시간·야간근로와 체력소모가 심한 특성으로 내국인을 구인하지 못해 발 동동 구르던 식품제조업체와 택배회사는 한시름 덜었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보도자료에 적은 대로, 이들 업종·직종과 비수도권 사업장의 인력난은 열악한 노동조건, 나아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내국인 노동자를 대신하도록 중·저소득국 출신 노동자를 더 많이 유입하겠다는 정책은 정부 표현 그대로, 기업과 사업주에게 '빈 일자리' 대책이라고 생색은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대했던 효과조차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행 고용허가제만 하더라도,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구속 조건이 사업주에 의한 착취를 용이하게 해 노동자가 미등록 체류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장을 이탈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정부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이미 한 달 전 노동부는 고용허가제의 현행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이주노동자가 애초 허가받은 지역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추가로 도입했다.

법무부는 역대 최고 규모로 증가한 미등록 이주민 수를 줄이겠다며 올 초부터 분기별 일제단속을 정례화했다. 7월 24일 자 법무부 보도자료는 올 상반기에만 3만 7000명의 미등록 이주민을 출국조치해 역대 최고 단속실적을 올렸다고 자랑한다. 자, 그럼 이제 문제는 모두 해결된 걸까?

최저임금보다 낮아도 출신국 GDP 고려하면 적정?
 

지난 7월 1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육아)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서울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이주가사노동자 시범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시범사업은 고용허가제 업종 확대를 통한 이주가사노동자 유입이 주 내용이며,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자 인력난과 저출생을 정책 배경으로 제시한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볼 때 이주가사노동자 유입이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슬그머니 대체하는 중이다.

인력난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비용, 다시 말해 가사노동자 임금이 핵심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여러 업종‧직종과 비수도권 사업장의 인력난이 가파른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저임금을 감수하는 이주노동자 덕분이다.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이 형성된 가사노동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를 유입해 보겠다는 게 시범사업의 목적으로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년 전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온 뒤 이주가사노동자 유입을 처음 제안하면서,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고 운을 띄웠다.

이후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이주가사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법안을 발의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논란 끝에 시범사업은 결국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여전히 불만이다.

"시범사업 참여가 유력한 필리핀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500달러로 우리의 10분의 1 정도"이며, "이분들에게 월급 100만 원은 자국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의 몇 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 최저시급을 적용하면 월 200만 원이 넘는다"라며 "문화도 다르고 말도 서툰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며 200만 원 이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비용(임금)을 낮추지 못한다면 이주노동자 유입의 의미가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이유가 뭘까. 오세훈 시장 말마따나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는 마음으로 제안한 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국인 가사노동자 임금도 지금보다 낮출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게 아닐까. 안 그래도 감소중인 내국인 가사노동자 수가 더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주노동 통한 빈곤 탈출 기회?

많은 이들이 시범사업의 문제를 골고루 지적했지만, 시범사업 찬성론이나 불가피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무엇보다,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의 업무 만족도가 높다거나, 최저임금보다 덜 주더라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빈곤 탈출의 기회라는 주장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빈곤 탈출의 기회는 실상 누구의 빈곤인지를 살펴야 한다. 중·저소득국에서 고소득국으로 이주한 노동자 당사자는 본국에 있을 때보다 산술적으로 더 많은 소득을 벌 수 있다. 이중 상당 금액은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되고 이들 역시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빈곤 탈출의 기회는 어디까지나 이들 개인과 가족에게 발생하며, 이러한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은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노동의 공급과잉을 해소해 남아있는 이들의 고용 조건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거나, 송금을 받아 늘어난 소득으로 세수 증대나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대사항이다. 더 분명하고 직접적인 효과는, 송금을 받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 불평등, 그리고 송금에 대한 경제적 의존으로 인한 고용·사회보장 등 공적 인프라에 대한 사회적 저투자다.

최저임금보다 덜 주더라도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유입하자는 주장은 이들 국가의 송금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극한으로 높이자는 의미이며, 중‧저소득국 인구 전체가 송금을 받는 상황은 현실적이지 않다. 애초에 송금 경제를 통한 빈곤 탈출이란 사회적 처방이기보다는 개인화된 전략이다.

이주가사노동자의 주요 송출국인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자국민의 해외 노동이주를 노동력 수출이라는 발전 전략으로 삼는 대표적인 나라다. 필리핀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유럽 국가들이 사재기한 백신과 필리핀 간호사를 맞바꾸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백신을 구할 돈도, 힘도 없으니 나온 궁여지책이었겠으나, 필리핀은 본래 필요 이상으로 자국의 간호사를 교육·훈련해 해외에 수출하는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투입은 사회적인데, 산출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자국민을 위한 의료체계는 더욱 열악해진다.

이주노동자는 왜 저임금을 감수하는가
 

지난 8월 20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업무 만족도 역시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데, 무엇보다 기대 수준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취업국 기준에 비춰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내국인 노동자와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만족'한다면, 이주노동자의 기대 수준을 다르게 만드는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왜 저임금을 감수하는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왜 이주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이다. 이주의 목적, 이주를 추동하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원인을 쫓아 올라가야 한다.

불평등한 조건이라도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그 일자리가 출신국 기준에 비춰보면 더 나은 임금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이유라면, 결국 국가 간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원인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가가 노동력 수출을 발전 전략으로 삼고, 해외 노동이주가 나와 가족의 빈곤 탈출을 위한 거의 유일한 기회라면, 이를 택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는 자율적 선택이기보다는 제약 속에서 내려진, 강요된 선택에 가깝다.

취업국 맥락에서 불평등한 조건이라도, 출신국 맥락에서는 없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은, 이주노동자가 결국은 취업국에서 살고 일하며 그러한 불평등한 조건을 몸에 새긴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한국 사회가 용인하는 이주노동자 불평등은 작업환경 위험인자와 같이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에 대한 노출에서부터, 건강보험 자격과 같이 건강을 보호하는 자원에 대한 접근성에 이르기까지, 건강을 좌우하는 요인 또한 불평등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이미 목도하고 있듯 이주노동자의 높은 산재발생과 사망, 낮은 의료접근성과 이용이라는 불평등한 건강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정책이 한국이라는 국경에 갇혀 논의될 때, 이주노동자가 중·저소득국 출신이라는 점이 그저 주어진 조건으로 간주될 때, 이주노동자 불평등은 당연한 것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실로 이주노동자 정책을 상상하는 맥락에는 국가 간 불평등이라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구조적 조건이 있다. 현재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맥락으로 삼으면서 또한 다양한 수준에서 재생산하고 있다.

이주가 국가 간 불평등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주노동자 정책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관점에서 기획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건강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정책과 제도는 물론, 국가 간 불평등의 역사‧정치적 원인까지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 송출국이 노동력 수출을 발전 전략으로 삼는다면, 수용국인 한국은 저임금 이주노동에 의지한 생산과 재생산을 발전 전략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국가 간 불평등의 세계적 체계에서 한국 사회와 나의 위치성을 인식하는 것, 거대하지만 작은 출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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