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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철빈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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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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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2022년 불거진 '빌라왕 김대성' 사건(김대성씨는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보유한 임대인이었는데,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다가 2022년 10월 돌연 사망했다. 피해액은 총 3280억 원에 달한다)이다. 1천 명이 훌쩍 넘는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 이철빈 회원도 있다. 부동산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부동산 계약에 빠삭했고, 등기부등본은 물론 건축물 대장까지 야무지게 확인한 뒤 집을 계약했다. 그렇지만 전세사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의 사례는 전세사기가 임차인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리고 전세사기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불안과 자책감에 시달리면서 혼자서 끙끙대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다른 피해자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활동에 나섰고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공동위원장이 되었다.

이철빈 위원장을 만나 우리 사회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활동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삶 포기할 정도의 절망감에 빠지는 이유

- 우선, 어떤 피해를 겪었고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21년 10월에 서울 송파구에 있는 전셋집을 계약해 살게 됐어요. 보증금은 2억 1천만 원이었습니다. 그중 1억 2천만 원은 대출로 마련했고요. 그런데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겠다던 임대인 김대성씨가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종부세가 체납돼 집에 압류가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이게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서 토론회나 간담회도 많이 열렸는데, 부동산 문제에 이해도가 있다 보니 제가 질문도 하고 사례 발제도 했어요. 그러면서 활동에 나서게 됐죠. 2023년 초에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불거지고 같은 해 4월에 전국 단위 대책위가 꾸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위원장 역할도 맡았습니다.

- 피해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런 일을 당하면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극한의 상황까지 떠올리게 되죠. '대출을 못 갚으면 신용불량이 되고, 경제 활동에 문제가 생기고,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식으로요. 한두 달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워서 혼자 끙끙 앓았어요.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달라졌어요. '전세사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을 순 없지 않나' 싶더라고요.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얼마 전 여덟 번째로 피해자가 돌아가셨습니다. 전세사기가 삶을 포기할 정도의 절망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세사기 피해 자체보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여기저기 도움을 받으러 다녀요. 무엇보다 공공 기관을 찾죠. 국가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하니까요. 그런데 누구도 응답하지 않아요. 경찰은 "형사가 아닌 민사라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하고, 공인중개사나 임대사업자를 관리·감독하는 지자체는 "그건 사인(私人) 간의 계약이다, 우리가 모든 걸 알 수 없다"고 하고. 그러면 고립감이 찾아오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집니다. 공황장애와 수면장애도 겪고요. 또 어떤 분들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스트레스나 과로로 돌아가시기도 해요.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는데, 이게 사회적 타살이 아니면 뭘까요?
 
2024. 5. 14.(화) 저녁 8시,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행진 및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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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사기 시민사회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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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전세사기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 탓'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피해는 안타깝지만 국가가 혈세를 들여 지원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요.

제 사례가 증거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임대차 관련 업무를 4년 했어요. 전셋집을 계약할 때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을 꼼꼼히 봤는데 집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근저당도 없고 채무 관계도 없고 심지어 임대인이 민간 임대사업자로 등록된 좋은 주택이었어요. 공인중개사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할 때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요. 사실 김대성은 그때 이미 세금이 63억 원 체납됐지만, '임대인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저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죠. 이런데도 임차인이 사기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설령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집을 계약했다고 해도 사기를 친 건 임대인인데 왜 임차인이 욕을 먹어야 할까요?

얼마 전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다"고 발언했죠. 그런데 전세사기는 명백하게 정책 실패의 결과입니다. 2008년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는 대신 '빚내서 세 살라'는 전세자금대출제도 확대 정책, 2013년 무분별한 전세보증 확대 정책, 2017년 말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등 3가지 정책이 얽히면서 전세사기 대란에 일조했어요. 전세사기 일당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서 건실한 사업자로 둔갑했죠. 보증보험 가입 조건도 널널했어요. 부실한 전세 계약을 해도 금융권은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요. 사실 전세사기 사건은 2010년대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처벌을 안 하니까 전세사기 일당이 자신감을 얻고 계속 일을 벌인 거예요. 결국 국가의 과실인 거죠.

전세사기특별법 왜 개정해야 하냐 하면

- 전세사기로 삶을 위협당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부동산 시세차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죠. 전세사기를 불러온 '무자본 갭투기'도 마치 영리한 재테크 방법인 것처럼 '갭투자'라고 불렸어요.

부동산 광풍의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안정적으로 살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을 텐데요. 궁극적으로는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내쫓길 걱정 없이 세입자로 살아도 되는 사회라면 이 광풍이 덜하지 않을까 싶고요. 또 하나는 '집을 통해서 평생 모을 돈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산 증식 욕망이 있을 거예요. 부동산 시세차익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과세해서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사회주택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조금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인 집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거니까요.

- 2023년 6월 1일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는데 대책위는 실효성이 없다며 개정안을 요구했지요.

일단 피해자 인정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요. 특히 전세사기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는 요건이 문제입니다. 임대인의 의도는 수사를 해야 명확히 알 수 있잖아요. 한두 명이 고소장을 낸다고 해서 수사를 시작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사기당할 거면 유명한 임대인에게 당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와요. 또 피해를 인정받아도 지원이 너무 부족해요.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한 돈을 장기 상환하게 해주거나 피해주택을 매입할 때 새로운 대출을 받게 해주는 정도죠. 보증금 회수 방안은 없고, 결국 피해자가 알아서 빚을 갚고 피해주택을 떠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책위는 '선구제 후회수'를 주장하고 있어요. 국가가 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서 임차인에게 적절하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차후에 채권을 활용해 돈을 회수하라는 거죠. 피해자가 수년간 두려움에 떨면서 직접 보증금을 회수하도록 떠넘기지 말라는 겁니다. 수만 명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니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비용이 들겠지만 우리 사회가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관계자들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을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관계자들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을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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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사기 문제가 자기 일이라고 해도 대응 활동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회사 일과 활동을 병행하는 게 물리적으로 큰 부담이에요. 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각자 사정도 다르고 처지도 똑같지는 않아요. 저마다 상황이 시급하고 절박하다 보니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죠. 가끔 대책위 활동을 잘 몰라주는 피해자를 보면 '현타'도 와요. 그럴 때는 별다른 방법은 없지만, 대책위 분들이 힘이 돼요. 대책위 사람들과 같이 식사하고 커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데 그럴 때 힘을 받아요.

-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죽지 말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피해자가 돌아가시는 일입니다. 조금만 버텨주시면 저희가 더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자책하는 피해자를 많이 봤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그렇지만 문제를 뜯어볼수록 전세사기는 개인이 주의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 더, 돈은 빼앗겼어도 일상의 행복까지 뺏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소한 기쁨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버티는 길이기도 해요.

- 지난 1월 1일에 참여연대 회원이 되셨어요. 날짜에 의미가 있을까요?

새해 결심 같은 거예요. 함께해주는 단체들에 감사한 마음이 커서 '올해는 이런 단체들을 응원해야지' 생각했어요. 덕분에 피해자들이 많이 헤매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거든요. 참여연대가 전세사기 대응 활동을 너무 잘하는데, 지켜보면서 안쓰러운 마음도 커요. 참여연대가 주거 영역의 활동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인원이 제한적이고 자원도 한계가 크거든요. 회원님들이 더 많은 마음을 보내주시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후원 독려 말씀, 참 감사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나에게 참여연대란?

두 가지가 떠올라요. 하나는 '시민단체 큰형님'(웃음) 그리고 '느티나무'. 참여연대가 운영하는 시민배움터의 이름도 '아카데미느티나무'인데,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시민이 벼랑 끝까지는 몰리지 않게 버티게 해주는 나무, 저에게는 참여연대가 그런 버팀목 같아요.

덧붙이는 글 | 글 박효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6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전세사기, #전세사기피해, #참여연대, #참여연대회원, #깡통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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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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