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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 젊은 교사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료 교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마다 한탄이 이어졌고 학교 분위기는 2학기 내내 무거웠다. '나도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품어온 교사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우리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거세게 내리는 장대비 속에서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요구하며 올해 2월까지 열두 차례 집회를 이어왔다.
 
2024.4.26. 서울시의회 앞, 서울학생인권조례 반대 기자회견
 2024.4.26. 서울시의회 앞, 서울학생인권조례 반대 기자회견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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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요청에 응답한 양 2024년 4월,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열두 차례의 교사 집회에서는 단 한 번도 학생인권을 문제 삼지 않았다. 교사들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으로 ▲ 교육활동을 좌지우지하는 악성 민원 ▲ 수업 연구 시간을 앗아가는 각종 행정 업무 ▲ 학생 또는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문제 발생 시 담임 혼자 책임을 감당하는 구조 등을 이야기해왔는데, 애먼 학생인권에 누명을 씌워 교권 회복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한 것처럼 포장하는 지역 의회의 행태에 무척 화가 났다.

실체 없는 학생인권조례 괴담

학생 인권 때문에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프레임은 얼마나 납작하고 구태의연한가. 2023년 정의당 정책위원회에서 발표한 '2017년~2021년 5년간 시도별 교육활동 침해 현황'에 따르면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학생인권 조례가 있는 지역의 경우 0.5건, 없는 지역은 0.54건이다. 

이 결과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1 또한 '2022년 경기도 학생인권실태조사'를 활용한 김종우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이 학생인권조례를 알고 인권을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수록 교권 존중 수준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 즉, 학생의 인권만 강조했기에 교권이 추락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지역 의회의 결정은 합리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교사와 학생을 갈라치기하는 무능한 판단인 것이다.

지역 의회에서 말하는 '교권을 침해하는 주범'인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갖는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2012년부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괴담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흉흉한 소문과는 달리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갖는 위상은 사실 그리 대단치 못했다.

부끄럽지만 인권교육을 공부하기 전에는 학생인권조례를 읽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조례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를 교육해본 경험도 없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읽었을 때 나와 동료 교사들을 두렵게 한 괴담의 실체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무시무시한 족쇄인 줄 알았던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존중해야 마땅한 보편적 수준의 권리 규범이었고, 교사를 징벌하는 조항도 없었다.

학생인권조례는 헌법,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학교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학교 구성원이 조례의 세부 조항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조례의 시행 자체가 학교 문화 전반에 미쳐온 긍정적 영향은 분명하다. 2021년에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학교의 인권환경 조성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서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감소시키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3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생활규정의 개정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기존 학생생활규정은 학생의 권리는 빠진 채 학생들이 지켜야 할 책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 이를 기반으로 개정한 학생생활규정에는 차별 금지, 참여권 등 학생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 권리의 내용을 포함됐다.  

학생인권조례는 괴담처럼 교육활동을 억압할 강제 조항이 아닐뿐더러, 조례의 시행 자체가 갖는 순기능이 분명하다. 차별 금지, 양심의 자유 등 보편적 권리 내용을 담고 있는 규범적 성격의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아동학대 신고를 한다면 세계인권선언이나 헌법을 내밀고도 신고할 수 있다. 만약 실제로 보편적 권리를 침해한 행위가 있었다면 처벌받아 마땅할 것이고, 권리 조항을 악용한 허위 신고라면 권리의 내용이 아니라 그걸 막을 방패막 없는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한편, 보편적 수준의 권리 규범이라면 헌법, 교육기본법 등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의 일환으로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동시에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해당 조례안은 학교 권력관계 안에서 상대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 집단의 위치를 간과한다. 물론 성별, 양육자의 계층, 개별 학생의 성향 등에 따라 작동하는 관계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소지품 검사, 용모 제한 등 구체적 장면에서 권리가 침해되기 쉬운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도 보편적 권리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교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학교 내에서 교사들의 위치는 어떠한가. 학교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들 앞에서 개별 교사들은 책임을 홀로 감당하고 있다. 학생의 돌발 행동이 일어났을 때,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매 순간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 때, 관리자가 책임 면피에만 급급할 때, 법적 보호와 협력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사보험에 의존하여 구제 방안을 스스로 강구한다. 교사들이 학기 초마다 적어도 자신의 학급만은 유명(?) 학생과 보호자가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학교가 파편화되어있다는 방증이다.

그렇기에 학생인권이 교권을 위협한다는 프레임에 동요하는 동료 교사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 학교 밖에서도 개인의 사적 권리를 앞세운 이기적 행태는 만연하다. 재산권을 빌미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각종 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발언하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을 학급에서 경험할 때 개별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나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할까봐 교사들은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물론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당장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검사가 가능해지거나 두발·용모 규제, 체벌이 부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권 회복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였다'라고 선언하는 공적 메시지의 상징성이다. 조례의 폐지라는 행위는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학생인권 때문이라는 착시 효과를 낳는다. 교권과 대립하는 학생인권이라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실제 교권 회복과는 무관한 의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학생인권을 삭제하는 것은 결코 교사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교권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학생의 권리를 삭제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곳에서 또 다른 약자인 개별 교사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권리를 남용하고 악용하는 행위의 문제는 권리의 언어를 앗아감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타인, 공동체와의 관계 안에서 권리의 언어를 감각하게 함으로써 가르칠 수 있다. 권리와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 다양한 관계맺음 방법을 제대로 교육할 때, 학교 내 다양한 관계 안에서 교사의 권리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때부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대표적으로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2022년 8월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 성전환, 조기 성행위, 낙태 등 비윤리적 성행위들과 생명 침해행위를 정당화한다"며 조례 폐지 청구인 명부를 제출했다.4 누가 지속적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원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문제 삼아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교사 대회 이후 시의회가 '교권 회복'을 위하여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결정했다고 선언한다. 무엇을 의도하여 무엇으로 위장하고 있는가.

교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보편적 권리 규범을 다루고 있는 인권조례인가, 교육 구성원의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교권 회복을 빌미로 학생과 교사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을 이용하는 지역 의회인가, 교육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방안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갈등을 조장하는 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정부인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소식을 듣고 이를 규탄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조직한 교사 서명에 일주일 만에 전국에서 1800여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누가 어떻게 교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느끼고 있다. 지역 의회의 기만을 좌시하지 않음으로써 인권을 바탕으로 교육을 이어갈 교사의 권위를, 교사의 권한을, 교사의 노동권을, 교사의 인권을 지켜나갈 것이다.

1.  '[단독] 교사권한 침해, 학생인권조례 있는 곳 0.5건-없는 곳 0.54건', 한겨레, 2023.7.26.
2.   '학생 인권과 교권 관계에 관한 학생의 인식', 김종우·김위정·이가람, 《인권연구》, 제6권 제1호, 2023.
3.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학교의 인권환경 조성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박환보, 《교육사회학연구》, 제31권 제1호, 2021.
4. '잇따라 폐지되는 학생인권조례', 강원도민일보, 2024.5.3.

덧붙이는 글 | 글 전세란 서울 지역 초등교사.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6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서울시, #서울시의회, #학생인권조례, #서울학생인권조례,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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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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