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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사 4년 차 방송작가 정수현씨는 하루 8시간 근무하고 206만740원을 받기로 했다. 2024년 월 최저임금이다. 하지만 그의 실제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이 되기도 했고, 주말에도 일했다. 연장수당, 야간수당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채용공고에는 재택이 가능하고 업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사무실로 출퇴근해야 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다른 이들은 모두 재택을 하고 회의가 열릴 때만 사무실에 나왔는데, 정수현씨 혼자만 출근했다는 사실이다. 하루종일 혼자 사무실을 지키면서, 문제제기하면 할수록 이상한 사람이 돼 가는 일터에서 그는 괴로웠다.

제작사가 내민 '프리랜서 근로계약서'

정수현씨는 일을 시작할 때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업무로 인한 갈등, 은근한 괴롭힘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월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았다. 제작사는 해고를 하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 계약서의 이름이 매우 이상했는데 '프리랜서 근로계약서'였다고 한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계약서라니! 추측하기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표준근로계약서 앞에 프리랜서라는 말을 급하게 붙인 듯했다. 콘텐츠 업계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활용률은 매우 저조하다는 평가다. 

방송 미디어 현장에는 '프리랜서' 계약이 많은데 일하는 사람들도 근무시간과 공간이 유연한 노동형태를 선호하기도 해서 프리랜서 계약을 선택한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 '프리'하게 일하지 않는 무늬만 프리랜서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정수현씨처럼 채용공고와 실제 내용이 다를 뿐 아니라, 제작사가 지정한 사무실에서 지휘 감독 하에 일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꼼수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착취하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 '프리랜서 근로계약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올해 1월 회사가 갑자기 해고 통보를 하면서 내밀었던 계약서다. 프리랜서 근로계약서라는 앞 뒤가 맞지 않는 계약서를 급조해 '너는 프리랜서니 권리가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 프리랜서 근로계약서 올해 1월 회사가 갑자기 해고 통보를 하면서 내밀었던 계약서다. 프리랜서 근로계약서라는 앞 뒤가 맞지 않는 계약서를 급조해 '너는 프리랜서니 권리가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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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공고와 다른 업무 환경, 장시간 노동과 반복되는 야근, 업무 과정에서 은근한 괴롭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정수현씨가 그곳에서 일하며 겪은 일인데, 방송 미디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다. 모두 비슷하게 열악하다.

정수현씨는 현재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진행하고 있다. 정수현씨가 해고 후 방송현장 문제 해결 위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에 연락을 해 왔을 때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부당한 상황을 알리고 싶어 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시급 5000원', 방송 미디어 현장은 최저임금 안 줘도 되나요?

"평일 밤 11시까지 일했고, 주말도 최소 4~12시간은 일했어요. 급여를 대충 계산해보니 시급 5000원 수준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수현씨가 지난 3월 19일 '진짜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할 말 잇 수다' 집담회에 패널로 참가해 한 말이다. 집담회 참여를 처음 제안했을 때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 무대에 서고 마이크를 들었다. 정수현씨의 말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방송 미디어 현장의 상황을 돌아보게 했고, 업종, 직군, 분야도 다양하고 급여지급 방식도 다르고 보수 수준도 천차만별이지만 여전히 최저임금 미만의 노동자들이 방송 미디어 현장에 많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특고(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수가 계속 늘어나 847만 명에 달하는데도 최저임금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고, 방송현장의 대다수 '무늬만 프리랜서'들은 방송사, 제작사의 지휘 감독을 받고 일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한다.

방송현장은 무수히 많은 법원 판례, 노동위 판정,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등을 통해 노동자성이 인정됐지만, 현실에서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지속되고 있다. 정수현씨처럼 '시급 5000원'을 받으며 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알음알음 일을 구하게 되고 평판이 중요한 방송현장에서 부당한 계약 조건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며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중에 더 좋은 자리가 있겠지, 방송을 계속 하려면 참고 견뎌야 해라고 주문을 걸면서 버티는 것이다.

현황 파악 조차 안 되는 노동자들... 이들이 싸워야 하는 이유
 
6월 11일 열린 ubc울산방송 실소유주 SM그룹 책임 촉구 기자회견 장면
 6월 11일 열린 ubc울산방송 실소유주 SM그룹 책임 촉구 기자회견 장면
ⓒ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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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미디어 현장에서 최저임금 관련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임금과 관련한 기준이 없고, 분야 직군 별로 급여 계산 방식도 다르고, 직급별로 차이도 많기 때문이다.

차이도 크다보니 방송현장 미디어 전반이 최저임금 미만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 스타일리스트, 의상, 소품, 미술, 외주제작사의 방송작가 등 몇몇 직군의 저연차 노동자들이 해당될 것이라고 실태조사나 사례 등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시작되면서 플랫폼, 특고, 프리랜서 확대적용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도 노동약자인 플랫폼 특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만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목소리 내고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플랫폼, 특고, 프리랜서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온전한 노동권을 누리며, 최저임금이 보장될 수 있도록 더 많이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방송 미디어 현장에서도 최저임금 적용 확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알려나가려고 한다. 이것이 정수현씨의 바람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온라인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최저임금, #방송노동자, #프리랜서, #방송미디어, #근로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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