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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로 가는 길은 멀다. 평택역 근처 평택극장 앞에서 배차간격 1시간 정도인 16번 버스를 타고 25분 가량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여기는 평화와 예술의 마을 대추리입니다'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그러나 7일에는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대추리 마지막 문화제 '매향제'가 열린 7일 오후 내가 찾은 대추리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대추리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웃음, 지킴이들의 열정 대신 오직 눈물만이 있었다.

▲ 황량하기만 한 대추리 들판
ⓒ 변태섭
▲ 집은 부서졌고 사람들은 떠났다
ⓒ 변태섭
▲ 들판은 을씨년스럽고 포크레인 소리만 요란하다.
ⓒ 변태섭

사방이 포크레인과 트레인 소음으로 말미암아 시끄러웠다. 주민들을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집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폐허라 하기엔 옛 기억이 스며든 곳이었고, 추억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 멀어진 곳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지우 "나 내일도 오고 싶은데...

"이제 와서 알려봐야 뭐할껴. 속상허기만 하지. 송아리도 그리 좋지 않어. 남의 집이지 뭐, 저 새끼들이 그것도 2년만 살고 내놓으라잖어. 쫓겨난 거야. 그래도 촛불시위라도 허고 싸울 땐 속이라도 시원했는데, 이젠 말할 것도 없어. 속만 상혀."

문무인상 철거 행사를 지켜본 대추리 주민 아니 이젠 '송아리 주민'이 된 홍옥선 할머니가 말했다.

"원래 집은 대추리인데 지금은 송아리로 옮겼어요. 오늘 행사 있다고 해서 아빠랑 할머니랑 동생이랑 같이 왔죠. 그런데 내일부터 못 들어온다면서요? 나 여기 정말 좋아하는데…."

▲ 대추분교까지 뱃놀이. 꽃배에 탄 경철이를 보며 상여꾼이 말했다. "우리가 비록 빼앗겼지만 경철이 네가 나중에 꼭 되찾는거야."
ⓒ 변태섭
▲ 한 외신기자가 문정현 신부를 인터뷰하고 있다. 문 신부는 말했다. "Truth comes up"
ⓒ 변태섭

말꼬리를 흐리는 지우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다.

오후 3시경, 문무인상이 철거되고 대추리 주민들과 평택 지킴이 등이 고사를 지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여태껏 애쓰고 고생한 게 있는데…"라며 주저앉아 오열하는 할머니의 모습, 어린 아이들을 끌어 앉고 눈시울을 적시는 어머니의 모습 등이 보인다.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트린다. ''약한 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역할'이라는 생각과 함께 단지 '이들을 '취재거리'로만 여기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동시에 든다. 물론 나 역시 사진을 찍고 수첩에 적었다.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 걸까. 우린 어느 편에 서야 할까.

▲ 문무인상을 태우기 전 고개를 숙인 대추리 할아버지
ⓒ 변태섭
▲ "어떻게 만들고 일군 땅인데" 한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 변태섭

이제 와서 알려봐야 뭐할껴, 기자들도 한 거 없어!

고사를 지내고, 소원을 담은 문무인상을 태운 오후 3시 25분경, 대추분교까지의 뱃놀이가 이어졌다. 대추분교까지 가던 중, 한 외신기자와 문정현 신부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문 신부가 강조했다. 우리는 힘이 없다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물었다. 평화로운 사람들을 왜 내쫓냐고.

"Truth comes up! we don't have power to get in. I don't know exactly how long does it take that. but someday, we'll get in. it's truth. this place is occupied like Iraq, Afhganistan. they don't have any reason to attack. but US goverment did. do you see any violence here? why US should make the problem that killed peaceful people? to benefit? America people don't know this situation. if most people know that, they'll angry!"

나도 문정현 신부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물었다. 문정현 신부는 "그건 몰라. 그런 걸 알면 빼앗기지도 않았지. 기자들은 그런 것만을 물어. 기자들도 한 거 없어"라며 평택미군 기지 확장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에 일침을 놓았다.

"이제 와서 알려 뭐할껴"라 말한 홍옥선 할머니의 말이 문 신부의 말과 어울려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 대추리 평화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 이날만은 노을도 아름답지 않다.
ⓒ 변태섭
▲ 문무인상에 불을 붙이자 주민들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 변태섭

비극은 선한 사람의 소름끼치는 침묵

대학생인 나 역시 일상에 치여 소홀히 했던 대추리였다. '비극은 악한 사람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라고 말한 킹 목사의 말이 생각났다.

안타까웠지만 남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대추리, 몇 번 와 본 것만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던 내 모습이 떠올라 역겨웠다. 바쁜 일상은 킹 목사가 말한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난 역겨움을 토해내고 싶었다.

"나 안 울련다. 내가 울어봐야 뭐하냐"하는 자조적인 말과 "울려면 청와대 가서 울어. 노무현 앞에 가서 울어야지. 여기서 울면 뭐햐"하는 분노의 말, 그리고 "어떻게 만들고 일군 땅인데…"하는 하소연 때문인지 앞에 허물어진 집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오후 4시경, 주민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란 다짐을 향나무에 새겨 무너진 대추분교 앞에 묻었다.

'나는 대추리 사람들 영원히 기억리라', '지금까지 지킨 땅 되돌아 올 수 있게 - 최현순', '있어야 하는 것이 있는 것 그것이 평화다', '어머님, 아버님 오랫동안 살아 꼭 돌아와 주세요 - 김성기', '대추리! 도두리!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꺼야! - 인권운동사랑방',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그 이름 영원하리라 - 문정현 신부'

향나무 현판은 항아리에 담긴 다른 물건들과 함께 묻혔다.

▲ 마이크 앞에 선 노인회장님.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진다
ⓒ 변태섭
▲ 대추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문정현 신부
ⓒ 변태섭

문정현 신부 "이삿짐차 상여차 같아 피눈물이…"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한 여기자의 눈물도 보았다. 분명 눈물이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일'은 '나의 일'이 되었다. '그들의 눈물'은 '나의 눈물'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눈물'이 되었다. 비로소 난 내 안의 역겨움을 토해냈다. 그리고 약한 자의 편에 선, 한 여기자의 눈물은 나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내가 꿈꾸는 '기자'라는 직업의 지표로 여길 만큼.

실버라이닝의 '평화가 무엇이냐'란 노래를 뒤로 하고 오후 5시경, 매향제의 마지막 순서인 문정현 신부와 신종원 이장의 맺음말이 시작되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삿짐차를 상여차라 생각하며 피눈물을 삼켰다. 미국 골프장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자주투쟁의 역사를 기록했다"며 "우리의 투쟁은 인간의 기본이다"라고 연설했다. 신종원 이장 대신 올라온 노인회장은 울분에 못 이겨 말을 잇지 못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인 작가 류외향씨는 "주민들과 많은 시민단체가 끈질기게 저항했던 대추리의 어느 부분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었으면 반전·평화운동의 성지가 되었을 것"이라며 "비록 이곳을 지키지 못했지만 반전·평화정신은 대추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 문무인상에 소원을 달고 있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
ⓒ 변태섭
▲ "황새울이여 영원하시오" 주름지고 굵은 손이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말해준다
ⓒ 변태섭
▲ "평화는 온다. 반드시"
ⓒ 변태섭
▲ 대추리 주민들은 평화를 묻었다. 그들의 삶과 기억이 깃든 그 곳에
ⓒ 변태섭

여의도에는 벚꽃이 만발했건만...

대학교를 휴학하고 지난해 6월부터 대추리 지킴이로 자리를 지켜온 넝쿨(애칭)씨는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로 마을주민들과 만나고 웃었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면서 "여기를 떠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후 5시 20분경, 뱃놀이를 한 꽃배를 태움으로 해서 대추리 마지막 문화제인 '매향제'는 막을 내렸지만 행사가 끝났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김지하 시인은 "숨 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 말했다.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자부하는 오늘날, 대추리 주민들은 "눈물로 울부짖으며 네 이름 외쳐본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이여 만세"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시간, 이들의 삶을 빼앗아간 여의도에는 벚꽃이 만발했지만, 이 곳 빼앗긴 들에는 봄조차 오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변태섭 시민기자는 한양대에 재학중이며 <오마이뉴스> 대학생 시민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추리, #주한미군, #강제 철거, #미국,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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