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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잘 지었다. <고민하는 힘>이라니. 장안에서 적당히 화제도 되는 모양이다. 잘 팔린다는 말. 하긴 '고민'은 우리한테 참 익숙한 말 아니겠나.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도 결국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고민' 덕분에 긴 밤 뜬눈으로 지새우게도 되고. 그러고 보니 '고민'은 주로 '안 좋은' 뜻으로 우리들한테 다가올 때가 많은 듯하다. '제발 고민 좀 그만하고 싶다'는 말은 자주 들어도, '제발 고민 좀 하고 싶다'는 말은 듣기 어려우니까.

고민한다는 건 힘들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나한테 '고민'은 자주 새로운 출발의 앞 단계 몫을 톡톡히 했다. 한 단계 성숙하는 밑거름도 되어 주었고. '고민'이 너무 힘들어서, 그 '고민'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나를 다잡아주었던 건, 바로 내가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고민하는 힘'이었다.

‘고민은 좋은 거다.’ 내 경험으로만 믿어왔던 것을 다른 사람의 말로, 그것도 믿음이 가는 설명으로 확인했다는 점.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 고민하는 힘 ‘고민은 좋은 거다.’ 내 경험으로만 믿어왔던 것을 다른 사람의 말로, 그것도 믿음이 가는 설명으로 확인했다는 점.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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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 제목만은 퍽 와 닿았다. 하지만 굳이 사서 읽을 마음은 없었다. '고민하는 힘'이 무언지 알고 있는데, 그걸 굳이 책으로까지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왜 읽었을까? 아는 사람이 그냥 줬다, 읽어보라고. 책도 얇고, 게다가 그냥 얻었으니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봐도 나쁠 거 같지 않았다. 이런 속마음도 있었나 보다. '요새 잘 나간다는데, 그럴 만한 책인지 검증 한 번 해볼까?'

앞부분은 좀 싱거웠다. 빤한 이야기들만 같고. 일본의 대표 지식인이 썼다는데 왜 이리 밋밋하지, 실망스럽기도 했다. 일본 문학가인 '나쓰메 소세키'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지나치게 기댄 내용도 책에 재미를 느끼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두 사람 다 내가 잘 모르다보니.

그러다, 드디어 밑줄 긋고 싶은 내용을 만났다. '그럼 그렇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뭔가 있긴 있을 거야.' 책을 읽다가 재미없어서 중간에 덮어버리는 걸 좀 속상해하는 편이라서 기왕 읽은 책,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아낸 게 기쁘기까지 했다.

'나는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사회에 이익이 되든 그렇지 않든 '알고 싶다'는 자기 내면에서 솟아나는 갈망과 같은 것을 솔직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도 의문과 불안이 까닭 없이 용솟음쳐서 어쩔 수 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청춘은 타자와 미칠듯이 관계성을 추구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청춘 시절부터 '나'에 대한 물음을 계속하여 '결국 해답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밖에 없다'라는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책 4장 '청춘은 아름다운가?'에서 내 마음을 확 끌어당긴 글이다. 나도 평소에 자주 묻는다. 주로 '나'한테. 해답을 찾기 어려워 그렇게 묻는 나를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묻고 또 묻는다. 까닭이 있든 없든, 어쩔 수 없이 용솟음친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정말 미칠듯이 궁금해서 그 물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글쓴이만큼 살지 않아서 그럴까, '결국 해답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직 더 찾아야 한다고, 모든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거라고 믿기에…. 다만 그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혹 나중에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볼 테다, 라는 마음만은 벌써부터 갖고 있다는 정도랄까.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 그것을 통해 사회 속에 있는 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고,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과도 관계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합니다. '자기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좋다'는 실감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수로 지냈던 나한테는 참 와 닿는 물음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럴 테다. 하지만 내놓는 답은 서로 달랐다. 먹고 살려고, 보람을 느끼기 위해…. 하지만 그 동안 보고 들었던 어떤 이야기보다 글쓴이가 내 논 저 답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앞으로 누군가 '왜 일을 해야 하지?'하고 물어온다면 저 답을 내밀어 볼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찾은 '답'이 마음에 든다면, 그리고 믿음까지 간다면 이제부터 그 '답'은 내 것이기도 하니까.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이며,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믿고 해답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해답에 납득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 지성만을 믿으면서 자기와 끝없이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방법입니다.'

'나는 스스로 이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거나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믿습니다. (…) 그러나 도중에 그만두면 그것이야말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민'에 대한 답은 '자기 믿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고민인 경우에는 더욱.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철 든 뒤에 내가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고민'이다. 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던져 온 '물음'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포기한 물음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그 '고민'을 놓지 않고 있다. 저 물음에 '답'이 없다는 '해답'에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얻을 때까지 나는 계속 '고민'할 것이다. 글쓴이 말처럼 도중에 그만두면 그것이야말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깊게 고민해서 꿰뚫어라'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확신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열립니다. (…) 따라서 고민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민은 좋은 거다.' 내 경험으로만 믿어왔던 것을 다른 사람의 말로, 그것도 믿음이 가는 설명으로 확인했다는 점.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고민을 해도 좋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갈망과 같은 그 물음들을 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이렇게 '고민하는 힘'을 믿고 따르려는 걸 보니, 나는 '청춘'이 맞나보다. 고민의 깊이가 얕기에 아직 뻔뻔해지기엔 이르겠지만, 계속 청춘으로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다른 '청춘'들에게 한 마디 남겨보고 싶다. '고민하는 힘'을 나보다 먼저 느끼고 확신한, 글쓴이의 말로 대신하는 게 아무래도 더 낫겠지?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청춘'을 알지도 못하고 끝을 내거나 그 소중한 청춘을 매일 한 장씩 떼어서 버리는 것, 그것은 불행이 아닐까요?'


고민하는 힘 (구 표지)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2009)


태그:#강상중, #고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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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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